“안녕하세요. 제 아버님께서 주신 한문 액자가 집에 걸려 있지만 글 내용을 알 수 없어 안타깝습니다. 딸들과 아내에게 설명해줄 수 있도록 도움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이철범 씨·59)
결혼하면서 받은 액자, 집안 대대로 내려온 병풍과 족보…. 걸어놓고 바라보는 것까지는 좋지만 정작 그 내용을 모를 때가 있다.
한국고전번역원의 ‘한문고전 자문서비스’가 인기를 얻고 있다. 2008년 시작된 이 서비스는 매년 1000여 건씩 의뢰가 들어오다 지난해에는 1600여 건으로 크게 늘었다. 번역원은 일반인이 글씨를 사진으로 찍어 인터넷(ask.itkc.or.kr)으로 보내면 번역해준다. 두세 쪽 정도는 무료이고 양이 많으면 약간의 수수료를 받는다.
지난해 가을 광주에 사는 채영옥 씨(73)는 “고향인 담양의 효자각에 걸려 있는 18대조 할아버지의 효행 내용을 알고 싶다”며 ‘효자평강채공정려기(孝子平康蔡公旌閭記)’라는 제목의 현판을 사진으로 찍어 보내왔다. ‘함께 부모의 묘를 지키던 호랑이가 꿈에 나타나 구해달라고 해 순창 범칫말에 가서 함정에 빠진 호랑이를 구해줬다’는 내용이었다. 번역원은 ‘동국여지승람’에 실린 조선 중종 때 관련 기록도 찾아 보내줬다.
벼루 도자기 같은 일상용품에 새겨진 글씨를 알고 싶다는 내용도 많다. 한 시민이 보내 온 밥그릇 뚜껑에는 ‘부(富) 귀(貴) 다남(多男)’이란 글자가 있었다. 번역원은 “밥을 먹으면서도 ‘부자 되고, 높은 자리 오르고, 자식 많이 낳기’를 기원한 조상들의 마음이 오롯이 전해지고 있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퇴계 이황의 친필, 세종시대 과거급제 합격증처럼 문화재급 보물로 추정되는 것도 있었다. 노성두 고전번역원 연구원(50)은 “소장품의 진품 여부는 사진을 통해 알 수 없지만 일상 속에서 고전의 향기를 찾도록 도와주는 일은 큰 즐거움”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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