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지방에 다녀오던 길이었다. 깜빡이를 켜고 고속도로에 진입하려는 순간 뒤에서 오던 덤프트럭이 갑자기 경적을 울리며 위협적으로 밀어붙였다. 순간 당황했지만 무사히 차로에 진입했다. 그런데 이번엔 그 덤프트럭이 추월을 하더니 앞에서 갑자기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충돌하기 일보 직전에 겨우 사고를 모면했다. 머릿속이 하얘지고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운전을 하다 보면 다른 차량의 정상적인 차로 변경조차도 참지 못하는 조급한 운전자를 자주 본다. 깜빡이를 켜고 진입하는 차에 양보하면 자존심이 상하는 것처럼 죽자고 덤벼드는 운전습관은 어디에서 연유한 것인지….
1990년대 초반 경찰서 교통과장으로 근무할 때였다. 당시에는 한 해 1만 명이 넘게 교통사고로 사망하던 때라 사망사고 현장을 자주 목격했다. 그중 일가족이 참변을 당한 사고가 있었는데 지금까지도 안타까운 마음을 갖고 있다. 너무 허망하고 처참한 모습에 “대(代)가 안 끊기려면 절대로 온 가족이 함께 차를 타고 다녀서는 안 된다”던 동료의 말이 농담으로만 들리지 않았다.
이런 참혹한 사고의 원인은 결국 평소의 나쁜 운전습관 때문이다. 신호만 지켰어도, 안전속도만 지켰어도, 안전거리만 유지했어도, 그리고 상대를 조금만 배려했어도 참변을 면할 수 있지 않았을까. 사고 당시 무엇이 그리 급했고 무엇이 그렇게 참을 수 없었을까.
교통사고는 나쁜 운전습관에서 시작돼 참혹한 불행으로 끝나는 비극이다. 나쁜 운전습관은 죽음에 이르는 병과 같다. 우리는 처음 운전면허를 땄을 때의 초심을 잊고 어느 순간부터 눈치껏 법규를 위반하며 나쁜 습관에 물들어 가고 있다.
요즘 해외여행을 다녀온 분들은 보행자를 우선하고 상대를 배려하는 외국 교통문화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본인은 막상 운전대를 잡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반칙운전자로 돌변한다. ‘교통법규를 지키면 나만 손해’라는 왜곡된 운전문화에서 비롯된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경찰관이 단속을 하면 ‘왜 나만 단속하느냐’, ‘먹고살기 힘든 세상에 별것도 아닌 것을 단속한다’고 불평하는 민원이 많다. 교통법규 위반은 범죄도 아니고 별일도 아니라는 생각이 만연해 있음을 방증해주는 사례다.
이번 동아일보의 ‘시동 꺼! 반칙운전’ 시리즈는 우리의 나쁜 운전습관을 변화시키고 생명을 살리는 촉매제가 되고 있다. 경찰은 올해 정책 방향을 국민 안전 확보에 맞추고 대표적인 안전위협 행위인 반칙운전을 추방하는 데 적극 나설 방침이다.
교통법규를 무시하는 행위는 생명을 경시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경찰은 원망을 듣더라도 법규 위반을 엄정히 단속할 계획이다. 또 일정 기간 동안 ‘무사고 무위반 서약’을 하고 실천한 운전자에게는 인센티브를 주는 등 반칙운전 추방을 위한 국민 참여 운동으로 확대할 생각이다.
우리는 범정부 차원의 교통사고 사상자 줄이기 노력 등에 힘입어 교통사고 사망자를 세계에서 가장 빠른 기간에 절반으로 줄인 저력이 있다. 국민이 마음을 모으면 못 해낼 게 없다. 경적 대신 손짓으로 인사하는 문화, 서로 배려하는 운전문화를 만드는 데 경찰이 앞장서겠다. ▶ [채널A 영상] ‘난폭운전 VS 양보운전’ 손익계산서 살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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