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나눔 릴레이]<10·끝>기부하는 가수 김진배 씨

주말이면 뜨는 ‘소래포구 김광석’
“노래하며 기부… 두 가지 꿈 이뤄”

김진배 씨가 인천 남동구 논현동 소래포구종합어시장 앞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 김 씨는 “장비를 마련하기 위해 1500만 원이 들었지만 누구에게도 내가 노래를 불러 아이들을 돕는다는 것은 알리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김진배 씨 제공

“부모를 잃고 홀로 된 아이들의 삶은 어떨까 걱정했을 뿐입니다. 답례를 받으려는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독일계 기업인 TUV-SUD코센 설계본부 상무로 일하는 김진배 씨(53)는 2011년 12월부터 3년째 ‘투 잡’을 하고 있다. 평일 일과시간에는 원자력발전소 내진 설계 업무를 담당하는 ‘상무님’이지만 주말이 되면 경기 성남시 집에서 인천 남동구 소래포구까지 자가용으로 50km를 달려가 가수로 변신한다. 차에는 기타와 전자 반주기, 스피커, 음향기기 등이 실려 있다. 장비는 모두 1500만 원 상당으로 자비를 들여 마련한 것이다.

소래포구에 도착하면 상무님은 ‘인천 소래포구종합어시장의 김광석’으로 변신한다. 봄부터 가을까지는 오전 10시∼오후 10시, 겨울에는 낮 12시∼오후 7, 8시에 식사 시간을 빼고 10시간 가까이 노래를 부른다.

어시장 앞 광장에서 모금함 하나를 놓고 노래 수십 곡을 열창한다. 하루 종일 노래를 부르고 나면 10만∼30만 원의 돈이 모인다. 그는 이렇게 매월 140만∼200만 원을 모아 인천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전액 기부한다.

김 씨가 기부한 돈은 소년소녀 가장 등 저소득층 어린이 60명에게 매월 각각 2만∼3만 원씩 돌아가 작은 힘이 되고 있다. 남동구 측도 똑같은 액수의 돈을 보태 어린이들은 매월 4만∼6만 원을 지원받는다. 김 씨가 노래로 돈을 많이 모을수록 어린이들에겐 많은 돈이 돌아간다. 김 씨가 더 열심히 노래를 부르는 이유다.

김 씨의 ‘이중 인생’은 2011년 12월 직장 동료들과 함께 회를 먹으러 소래포구를 찾으면서 시작됐다. 그는 어시장 앞 광장에서 인천 앞바다를 보면서 “바다를 배경으로 기타를 치면서 노래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상가번영회장을 찾아갔다. 번영회장은 흔쾌히 광장 사용을 허락했다. 그는 중학교 때부터 통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다. 첫 직장이었던 한국 전력기술에 들어가서도 음악 동아리를 만들어 음악 활동을 이어갔다. 직장 일이 바빠 잠깐 중단했지만 노래를 부르고 싶다는 생각은 늘 마음속에 있었다. 그러던 순간 소래포구 광장을 보고 “다시 노래하고 싶다”란 생각이 든 것.

그냥 노래만 부르면 의미가 없을 것 같았다. 노래와 기부를 결합하기로 했다. 신문에서 교통사고로 부모가 숨지고 어린아이가 홀로 남았다는 기사를 보며 ‘저 아이는 누구에게 의지해 살게 될까’ 하는 걱정을 했다. 부모 잃은 아이들을 돕겠다는 생각을 마음 한편에 품고 살았다. 소래포구 광장은 그에게 노래와 기부라는 두 가지 소망을 한꺼번에 실현시켜 준 꿈의 무대가 됐다.

김 씨가 첫 공연을 할 당시 박수를 쳐주는 사람은 거의 없었지만 이제 많은 사람이 그의 기부 활동에 뜻을 함께하고 있다. 그는 “처음 3만 원에 불과했던 모금액은 최근 30만 원까지 늘었다”면서 “처음에는 한겨울에 벌벌 떨면서 목이 터져라 노래하는 나를 보고 ‘미친 사람’이라며 수군거리기도 했지만 이제는 따뜻한 커피를 나눠주며 힘을 보태준다”고 말했다.

“중학교 3학년 때 신문 배달로 번 9700원을 주고 첫 기타를 샀었요. 그 기타가 제 인생을 이렇게 바꿔놓을지 몰랐습니다. 손가락을 움직일 수 있는 한 기타 치고 노래하는 ‘주말 가수’로서 아이들을 돕고 싶습니다.”

▼ “넉넉해야만 나누나요?” 올해 2950억 모금 역대 최고 ▼

■ 취재를 마치며

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동아일보는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 기부자 10팀을 인터뷰했습니다. 자신이 죽은 뒤 전세금을 모두 기부하겠다는 할아버지부터 자신의 경주마가 우승해서 탄 상금 1억 원을 모두 기부한 이들까지 많은 사람을 만났습니다.

이 기부자들의 삶은 대부분 넉넉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박수 받을 수 있는 것은 자신의 삶이 어렵든 쉽든 개의치 않고 세상을 위해 흔쾌히 기부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이들이 있어 세상이 한 발짝씩 발전합니다. 이들의 헌신이 세상의 빛이 됩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지난해 11월 26일부터 올해 1월 31일까지 역대 최고인 2950억 원을 모금했습니다. 사회의 온도를 높여준 사람, 바로 기부자 여러분입니다. 감사합니다.

박진우 기자 pjw@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