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차원(3D) 가상성형 프로그램을 통해 살펴본 본보 박훈상 기자의 성형 전(왼쪽)과 후의 모습. 서울 세인성형외과 제공
2011년 3월 부산. 사기 전과범 박모 씨(52)는 잘나가는 미용실 원장 A 씨에게 접근했다. 그는 위조한 땅문서를 보여주고 재력가로 행세했다. 결혼을 약속한 그는 A 씨로부터 신용카드, 자동차, 가게 권리금까지 받아냈다. 모두 5억 원. A 씨가 뒤늦게 속은 사실을 알고 경찰에 고소했을 땐 이미 잠적한 뒤였다.
그는 서울 강남의 성형외과를 돌며 눈, 코, 턱을 수술했다. 바뀐 얼굴로 성형외과나 등산모임에서 만난 중년 여성들을 상대로 다시 수억 원대의 사기 행각을 벌였다. 지난해 7월 박 씨는 다른 피해자의 고소로 경찰에 붙잡혔다. 하지만 경찰은 주민등록증 사진과 다른 얼굴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각진 턱은 둥글고 갸름하게 바뀌었고 쌍꺼풀은 더 짙어졌다. 경찰은 “거칠게 산 것 같은 박 씨가 둥글고 선한 사업가 인상으로 변해 있었다”며 “다른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면 마주쳐도 못 알아볼 뻔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성형외과 입구에 중요 지명 피의자 종합수배 전단 붙이기 △종합수배 사이트를 성형외과 전문의 단체의 성형포털 사이트나 각 병원 사이트에 링크 △긴급 수배자 발생 시 성형외과와 공조하는 안 등을 구상하고 있다. 대한성형외과의사회 황규석 기획이사는 “병원 의료진과 직원이 머무는 공간에 수배 전단을 붙이는 것은 바로 가능하다”며 “범죄자를 검거하는 공익적 일이어서 회원들도 긍정적으로 동참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말 기준 법원이 체포영장을 발부한 지명수배 건수는 5만5722건이다. 경찰청 최준영 KICS(형사사법정보시스템)운영계장은 “살인 수배자까지 성형하고 활보하는 현실을 감안할 때 성형외과의 협조가 필요했다”며 “경찰은 마지막 수배자 한 명까지 검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동안 살인부터 사기까지 다양한 범죄자가 성형으로 얼굴을 바꿔 왔다. 종합수배자 명단 1번이었던 살인 용의자 박모 씨(41)는 성형수술로 ‘날카로운 눈매’를 바꾼 채 3년간 도주했다. 30대 여성 사기범은 3000만 원을 들여 얼굴을 바꿨고 지문 조회로 덜미가 잡히기 전까지 마음껏 활보할 수 있었다. 그녀를 성형한 병원 관계자는 “그녀가 수배자인지 전혀 알 수 없었다”고 말했다. 성형외과는 성형시술에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데다 환자들이 본인 기록을 남기기를 꺼려 대부분 신원 확인 절차가 없어도 성형을 해주고 있다.
○ 감쪽같은 기자의 변신
성형으로 얼굴을 얼마나 바꿀 수 있을까. 지난달 30일 오전 본보 기자와 대학생 인턴기자가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세인성형외과의 도움을 받아 직접 가상성형을 체험했다.
황세휘 원장은 둥글고 큰 얼굴, 살짝 들린 높지 않은 코 등을 본보 기자의 얼굴 특징으로 꼽았다. 3D가상성형 프로그램으로 광대와 턱 부분에 안면윤곽술을 시행하자 외견상 얼굴 크기가 확 줄었다. 작은 눈도 이마눈썹거상술과 쌍꺼풀 수술을 거치자 아이돌 스타처럼 커졌다. 황 원장은 “얼굴의 특징을 바꾸면 180도 다른 사람으로 보일 수 있다”며 “나이가 들어도 바뀌지 않아 경찰 수사나 실종자 찾기에 이용되는 귀 부위도 성형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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