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공부/꿈을 만나다]고교생이 만난 모델 출신 교수 박둘선 씨·이리온동물병원 수의사 김태호 씨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2월 5일 03시 00분


모델은 자신감, 수의사는 동물향한 경외심 있어야 프로!

■ 슈퍼모델 박둘선 씨, 자기 신체조건에 맞는 무대에 서야 유리하고 겸손한 자세 꼭 가져야

카메라 플래시 세례, 화려한 조명 아래 펼쳐지는 런웨이…. 가녀린 몸에서 숨 막히는 카리스마를 뿜어내는 패션모델은 어느새 10대가 가장 선망하는 직업 중 하나가 되었다.

최근 경기 경화여고 1학년 엄민희 양(17)이 ‘신나는공부’의 도움을 받아 서울 서대문구에 있는 kac한국예술원 스튜디오에서 모델 박둘선 씨를 만났다. 이국적인 외모와 카리스마 넘치는 매력으로 세계 패션무대를 장악한 ‘톱 모델’ 박 씨는 예술전문교육기관인 kac한국예술원에서 방송연예예술학부 방송연예과 모델전공 교수로 활동한다.

승무원 꿈꾸던 그녀, 슈퍼모델 되다

대학 졸업 직전까지도 모델에는 관심이 없었다는 박 씨. 하지만 취업 걱정이 들 때쯤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찾아왔다. 큰 키와 이국적인 외모를 가진 그에게 한 친구가 백화점 패션쇼 무대에 모델로 서는 아르바이트를 제안한 것. 승무원을 목표로 1년을 준비해 왔지만 고배를 마셔야 했던 순간, 모델 아르바이트는 그에게 자신감을 찾아주었다.

“승무원시험에 계속 떨어지니까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하는 기분이 들더라고요. 그런데 패션쇼 무대는 달랐어요. 무대에 선 제 모습을 보고는 모두가 ‘잘 어울린다’며 인정해 주었죠.”(박 씨)

아무런 지식도 경험도 없이 선 무대였지만 박 씨는 단번에 모델이 되기로 결심했다. ‘도저히 그만둘 수 없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박 씨는 그가 선생님이 되기를 바랐던 아버지의 심한 반대에 부닥치고 말았다.

모델로 인정받는 모습을 아버지에게 보여드리기 위해 그는 1998년도 ‘한국 슈퍼엘리트모델 선발대회’에 출전했다. ‘어떤 상이든 타기만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모델연수원에 들어가 이를 악물고 연습한 끝에 감격의 1등을 차지했다. 아버지도 설득하고 자기 이름을 단번에 알린 성공적인 무대였다.

기성복은 날씬한 모델이, 맞춤복은 볼륨 있는 모델이

24세라는, 모델로선 다소 늦은 시기에 모델계에 발을 디딘 박 씨는 기회가 생기는 대로 무대에 올랐다. 선배 모델 중 갑자기 누군가가 빠지게 될 경우를 대비해 항상 대기하고 있어야 하는 신입의 설움도 그에게는 ‘또 다른 기회’였다. 리허설 때 잘해서 디자이너의 눈에 들면 옷 한두 벌을 더 입게 되어 무대에 서는 순간도 늘어날 수 있기 때문.

엄 양은 “성공하기 위해 기울인 노력이 남달랐을 것 같다”면서 박 씨를 보았다.

“한 번이라도 더 무대에 오르면 그만큼 눈에 띌 기회가 생기는 거잖아요. ‘땜방’이든 리허설이든 닥치는 대로 무대에 올랐죠.”(박 씨)

박 씨는 방송보다는 패션쇼 무대나 화보 촬영을 통해 모델계에 입문할 것을 추천했다. 패션쇼 무대는 오디션을 통해 그 기회를 잡을 수 있다. 일단 디자이너나 패션쇼 관계자들에게 인정받아 무대에 서면 현장에 온 패션잡지 에디터의 눈에 들어 화보 촬영을 할 기회로 이어질 수 있다.

모델을 양성하는 아카데미나 에이전시 등에 소속된 뒤 추천을 통해 화보 촬영을 먼저 시작하는 경우도 있다. 잡지 화보나 패션쇼 무대는 패션업계가 항상 눈여겨보기에 언제든 다른 디자이너나 패션잡지 에디터, 기자에게 캐스팅될 수 있다.

“자신의 신체조건에 따라 적합한 길을 잘 선택해야 해요. 프레타포르테(기성복) 무대는 근육이 적고 날씬한 몸매를 선호하는 반면, 오트쿠튀르(고급맞춤복) 무대는 볼륨감이 있는 몸매를 선호하니, 이런 차이점도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박 씨)

‘모델 포스’는 무대 위에서만

“모델에게 꼭 필요한 자질은 무엇인가요?”(엄 양)

자신의 최대 위기는 “내가 최고라고 생각했을 때”였다는 박 씨. 그는 “어떤 일이든 같겠지만 특히 모델은 겸손한 자세가 제일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모델은 무대 위나 카메라 앞에서 누구보다 당당하고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직업이지만, 무대 아래에서는 ‘내가 최고’라는 착각을 하지 말아야 성공할 수 있다는 것.

“모델의 작업환경은 한껏 뽐내고 폼 잡기가 좋잖아요(웃음). 하지만 무대 위나 카메라 앞에서만 모델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해요. 무대 아래에서도 ‘뽐내는 버릇’을 고치지 않으면 톱 모델로 성공할 수 없어요.”(박 씨)

글·사진 유수진 기자 ysj9317@donga.com
■ 수의사 김태호 씨, 아픈 동물에 대한 관심과 생명존중의 마음 가지고 보호자와의 소통도 중요
인천 신송고 2학년 조용진 군(오른쪽)은 이리온동물병원의 수의사 김태호 씨를 만났다. 김씨는 “수의사에게 가장 중요한 건 동물에게 관심과 경외심을 갖는 것”이라고 조언해 주었다.
인천 신송고 2학년 조용진 군(오른쪽)은 이리온동물병원의 수의사 김태호 씨를 만났다. 김씨는 “수의사에게 가장 중요한 건 동물에게 관심과 경외심을 갖는 것”이라고 조언해 주었다.

최근 애완동물을 ‘더불어 살아가는 동반자’의 뜻을 담은 ‘반려동물’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해지면서 동물을 치료하는 수의사와 동물병원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수의사의 세계를 궁금해하는 인천 신송고 2학년 조용진 군(18)이 ‘신나는공부’의 도움으로 수의사 김태호 씨(32)를 만났다. 경북대 수의과대학 졸업 후 서울대 수의과대학 내과학교실 석사과정을 마친 김 씨는 현재 이리온 동물병원 내과 과장을 맡고 있다.

이리온동물병원은 치료뿐만 아니라 동물을 대상으로 한 유치원, 호텔, 미용, 예절교육을 운영하거나 진행하며 반려동물에게 복합적인 문화공간을 제공하는 병원. 조 군은 김 씨를 최근 서울 강남구에 있는 이리온동물병원 청담점에서 만났다.

힘없고 나이 많은 동물 먼저 돌봐야

김 씨는 어떻게 수의사가 됐을까? 조 군이 수의사의 꿈을 키워온 과정을 물었다.

“중2 때 처음 강아지를 키운 뒤 동물병원을 드나들며 자연스레 ‘동물’과 ‘생명’에 관심이 생겨 수의사를 꿈꾸게 됐습니다. 수의과대학에서 예과 2년, 본과 4년을 마친 뒤 농림수산식품부 주관 국가고시를 치러 합격해야 수의사 면허를 정식으로 취득할 수 있어요.”(김 씨)

면허를 받은 뒤엔 수의사마다 진로가 달라진다. 크게는 ‘임상수의사’와 ‘비임상수의사’로 나뉜다. 임상수의사는 김 씨처럼 동물병원에서 반려동물을 치료하고, 비임상수의사는 바이러스와 줄기세포를 연구하거나 구제역 방역조치를 담당하거나 군대에 보급되는 음식을 검열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수의사가 될 방법은 수의과대학을 졸업해 수의사 면허를 취득하는 것뿐. 국내 수의과대학 10곳을 포함해 외국의 수의과대학 졸업도 인정한다. 수의과대학이 있는 학교가 많지 않은 데다 이곳에 진학하려는 학생들도 많아 경쟁률이 매우 높다. 최상위권 성적을 유지해야 하기에 고교시절 학업에 충실해야 하는 것은 기본이라고 김 씨는 조언했다.

김 씨는 “공부 성적보다 중요한 건 동물에 대한 경외심”이라고 강조했다. 동물을 ‘공경’하면서 동시에 두려워할 만큼 동물을 사랑하고 조심하고 보살피는 마음을 반드시 가져야 한다는 의미다.

“우리나라에선 대부분 예쁘고, 작고, 귀여운 강아지를 입양하려 해요. 그런데 대학 때 영국, 프랑스에 있는 국제수역사무국, 동물학대방지협회를 방문해 보고는 놀랐어요. 유럽에서는 나이 많고 힘없는 동물이 입양 1순위였지죠. 아픈 동물을 가장 먼저 돌봐야 한다는 의식, 동물에 대한 경외심은 특히 수의사에겐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김 씨)

동물을 하찮게 여기는 보호자가 가장 힘들어

김 씨의 하루 일과. 아침에 출근하면 간밤에 응급으로 들어온 동물과 입원한 동물의 상태를 점검하며 오전 회진을 한다. 이후 외래진료를 한다. 이 밖에도 병원 행정업무, 동물 보호자 교육자료 제작, 학회 강의자료 준비 등도 맡는다.

여기서 궁금증. 여기까지 보면 치료 대상이 동물이라는 점을 제외하고는 사람을 치료하는 의사와 업무가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의사와 수의사, 무엇이 다를까?

김 씨는 “동물은 스스로 통증 부위나 정도를 말할 수 없다”면서 “의사 전달에 한계가 있는 동물의 아픈 곳을 찾기 위해 진정한 교감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조 군은 ‘수의사로서 가장 힘들 때는 언제인지’를 김 씨에게 물었다.

김 씨는 “동물을 가족으로 여기지 않고 사람보다 못한 존재로 생각하는 동물 보호자를 만날 때가 가장 힘들다”고 답했다. 동물 진료의 최종 결정은 전적으로 그 보호자가 내린다. 진료 절차상 반드시 필요한 진료임에도 “개 한 마리 치료하는 데 무슨 컴퓨터단층촬영(CT)까지 하느냐”면서 치료를 거부하는 보호자도 종종 있는데, 이때 보호자를 이해시키고 치료 동의를 얻는 과정을 원활히 이끌어가는 것도 수의사의 중요한 역할이다.

“앞으로는 수의사 영역 안에서도 더 전문화된 분야가 생길 거예요. 의사도 소아과, 외과, 성형외과, 피부과처럼 진료 분야를 특화하는 경우가 있는 것처럼 수의사도 ‘전문의’ 제도를 시행하기 위해 협의 중이랍니다. 전문적인 수의사가 되고 싶다면? 무엇보다 생명에 대한 관심과 경외심을 끊임없이 유지하기를.”(김 씨)

글·사진 오승주 기자 cantar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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