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속의 중국인 ‘레인보 차이나’]<4> 한국의 화교, 조국은 3곳이라지만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2월 5일 03시 00분


한국에 뿌리내린 지 5代 130년… 여권-비자문제 해결안돼 아직도 ‘이방인’

지난달 10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89-1 화교(華僑)중학교(중학교와 고등학교 과정 통합) 구내 교실 건물 뒤. 눈 덮인 작은 구릉 위에 작은 1층 기와 건물이 장방형(長方形)으로 자리 잡고 있다. 입구에 걸린 ‘오무장공사(吳武壯公祠)’라는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19세기 청나라 말 광둥(廣東) 성 오장경(吳長慶) 수군 제독의 사당이다.

오 제독은 조선 조정으로부터 임오군란 평정을 도와달라는 요청을 받은 청나라 조정의 파견 명령에 따라 1882년 7월 군인 3000여 명을 이끌고 조선에 왔다. 이때 상인 40여 명도 군부대 보급 지원 등을 위해 동행했다. 오 제독이 중국으로 돌아간 후 1884년 사망하자 이듬해 고종은 조서를 내려 청나라 군대 주둔지(현재 을지로7가 3번지)에 사당을 세워 봄과 가을에 제사를 지내도록 했다. 이 사당은 1979년 현재 위치로 옮겨졌다.

“사랑은 남아…” 화교학교에 걸린 장제스 편액 이충헌 한성화교협회 회장이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화교중학교 교내 뒷산에 마련된 청나라 말기 오장경 광둥 성 수군 제독의 사당에 걸린 편액을 가리키고 있다. ‘중화민국 19년’(1929년) 장제스가 오 제독의 사당에 내린 글이다. ‘기봉유애’는 ‘그의 임무는 다했으나 사랑은 남았다’는 뜻이다. 이곳에는 위안스카이와 리덩후이 전 대만 총통이 보낸 글도 편액으로 걸려 있다. 구자룡 기자 bonhong@donga.com
“사랑은 남아…” 화교학교에 걸린 장제스 편액 이충헌 한성화교협회 회장이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화교중학교 교내 뒷산에 마련된 청나라 말기 오장경 광둥 성 수군 제독의 사당에 걸린 편액을 가리키고 있다. ‘중화민국 19년’(1929년) 장제스가 오 제독의 사당에 내린 글이다. ‘기봉유애’는 ‘그의 임무는 다했으나 사랑은 남았다’는 뜻이다. 이곳에는 위안스카이와 리덩후이 전 대만 총통이 보낸 글도 편액으로 걸려 있다. 구자룡 기자 bonhong@donga.com
‘한국 화교’들은 오 제독의 조선 파견 시 따라온 군인과 군 병참 지원을 위해 함께 온 상인과 그들의 후손들로부터 화교 사회가 시작됐다고 여긴다. 화교들은 지금도 매년 오 제독의 기일(忌日)에 전국의 화교 대표들이 모여 제사를 지낸다.

이렇게 시작된 한국 화교의 역사는 어느덧 130여 년이 돼 가장 오랜 화교 집안은 5대를 거슬러 올라간다. 화교 중 상당수는 산둥(山東) 성 출신인 것도 특징이다. 이런 배경 때문에 한중 간 교류가 확대되면서 화교의 한중 간 가교(架橋) 역할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이충헌 한성화교협회 회장(57)은 화교 취재를 요청했을 때 오 제독의 사당을 꼭 가봐야 한다고 했다. 오 제독의 사당이 비록 도시 개발에 따라 원래 위치에서 옮겨져 있고, 화교에 대한 한국 내 인식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한국 화교가 오래전부터 뿌리를 내려가고 있음을 보여주려는 것으로 보였다.

이 회장은 “한국 화교들은 미국이나 유럽 등 외국으로 나가 살거나 이민을 가더라도 한국을 고향으로 생각하며 그리워한다”고 말했다. 한국 화교는 이 같은 ‘역사적 특수성’이 있지만 법적으로는 ‘국내 체류 외국인’의 일부일 뿐이다.

협회는 ‘특수성을 인정받는 외국인’으로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협회는 지난해 10월 31일 서울시와 서울시 의회에 영주권을 가진 65세 이상 화교 노인에게 지하철 무임승차를 요청하는 청원서를 제출했다. 부산 대구 등 지방자치단체는 우대혜택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협회를 사단법인으로 인정받는 것도 숙원이다. 법인 인정을 받지 못하고 외국인 단체로만 등록돼 협회가 가진 건물의 임대료 등 수익금에 대해 소득공제 혜택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회장은 “협회는 매월 50만 원을 불우이웃과 학생 돕기 성금으로 내는 등 많은 공익사업을 한다”고 설명했다. 영주권을 획득한 화교들은 지방자치단체 선거에는 참여할 수 있으나 지역 연금에는 가입할 수 없다. 대통령 및 국회의원 선거에는 참여가 불가능하다. 이 회장은 “5대를 내려오고 앞으로도 대대손손 살아갈 화교들이 끝내 ‘외국인’으로 분류되고, 이 때문에 많은 정책이 그에 따라 적용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회장의 조부는 산둥 성 룽커우(龍口) 시 출신으로 한중 양국을 오가며 장사를 하다 부친이 7세 때인 1935년 한반도에 정착했다. 이 회장은 5남 3녀 중 일곱째다. 큰형과 이 회장 외의 다른 형제자매는 중국 미국 일본 말레이시아에 흩어져 살고 있다. 1990년 인수한 남산의 중식당 동보성(東寶城)과 무역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이 회장은 “앞으로도 한국에서 대를 이어 살 것”이라고 말했다.

화교의 수는 얼마나 될까. 구한말 10만 명을 웃돌기도 했지만(책 ‘중국인 디아스포라-한국 화교 이야기’) 점차 줄어들고 있다. 법무부 ‘출입국 외국인 정책본부’ 통계에 따르면 2011년 12월 말 현재 영주권을 가진 화교는 1만3702명, 영주권이 없는 장기 거주자는 5955명이다. 일부 고령자는 고향을 찾아 중국 국적을 얻어 돌아가기도 한다.

‘한국에 뿌리를 내리고 있으면서도 외국인으로 떠있는’ 화교들의 가장 큰 애로 사항은 ‘여권과 비자’ 문제다.
인천 중구 선린동 차이나타운에서 2011년 4월 열린 ‘중국 주간 문화축제’에서 화교들이 전통 용춤 공연을 하고 있다. 한국 화교들은 100년 이상 한국에서 뿌리 내리고 살면서도
‘외국인 아닌 외국인’으로 살고 있다. 동아일보DB
인천 중구 선린동 차이나타운에서 2011년 4월 열린 ‘중국 주간 문화축제’에서 화교들이 전통 용춤 공연을 하고 있다. 한국 화교들은 100년 이상 한국에서 뿌리 내리고 살면서도 ‘외국인 아닌 외국인’으로 살고 있다. 동아일보DB
한국 화교는 광복과 6·25전쟁, 그리고 분단 이후 대만 신분을 갖고 대만 여권을 받았다. 다만 대만 여권 소지자라도 대만 내 ‘호적(번호)’을 따로 얻지 않으면 대만에 들어갈 때 비자(5년 복수)를 받아야 하며 선거권이나 연금, 건강보험 등 복지 혜택도 받을 수 없다. 하지만 호적이 없으면 병역 등의 의무가 면제되고 정원 외 대학 입학을 할 수 있는 등 혜택이 있어 화교들은 선택적으로 대만 호적을 취득했다.

그런데 2000년부터는 호적을 받기 위해서는 1년 이상 거주해야 하는 등 조건이 까다로워졌다. 또 지난해 7월부터는 호적이 없는 화교는 대만이 비자 면제 협정을 맺고 있는 131개국에서 비자 면제를 받지 못하도록 했다. 새로 발급하는 여권에 ‘이 여권은 일부 국가 간 비자면제 프로그램이 적용되지 않음’이라는 문구가 담긴 직인을 찍는다. 대만 호적이 없는 화교는 중국 대륙에서도 ‘대만 동포증’을 받지 못해 은행 계좌를 개설하지 못하는 등 경제 활동에 많은 제한을 받는다.

이 회장은 “대만 호적이 없는 화교가 전 세계 대부분 국가에서 비자를 받아야 하는 문제는 글로벌 시대에 자손들의 활동을 크게 위축시킨다”고 말했다. 글로벌 기업에 입사한 화교 젊은이들은 다른 동료들과 달리 비자 때문에 출장을 다니는 데 불편한 게 많다는 것이다.

최근 대만 모 대학 3학년에 재학 중인 화교 자녀 J 씨는 학교에서 미국 유명 대학 연수 프로그램을 급히 마련해 학생들을 선발할 때 하마터면 참가하지 못할 뻔했다. 다른 친구들은 신청서 한 장으로 충분했으나 J 씨는 미국 비자를 급히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한국에 살고 있는 J 씨의 아버지(58)는 “우리 세대는 외국 갈 일이 많지 않았지만 자손들을 위해서는 비자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주장에 대해 대만 측 관계자는 “호적 없이 대만 여권을 받은 화교들은 오랫동안 대학 정원 외 입학이나 병역 면제 등의 혜택을 누리면서 의무는 다하지 않았다는 여론이 높았다”며 “이제는 호적을 얻어 의무를 다한 후 권리를 주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대만 밖에 거주하면서 대만 여권을 가진 화교는 6만 명가량으로 한국 내 화교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한국에 살면서 호적 취득을 위한 조건인 △1년 이상 거주(대학 재학 등 학생은 제외)하거나 △대학생의 경우 졸업 후 최소 6개월 이상 월 3만7000대만달러(약 134만6800원)의 직업을 구하기는 쉽지 않다고 화교들은 주장한다. 대만 대학 졸업자의 평균 월급은 2만∼2만3000대만달러다.

이 회장은 “인도네시아 등 화교가 많이 거주하는 상당수 국가는 대만 여권을 가진 화교에게도 자국 국적을 인정해 여권을 발급해 주기 때문에 해당국이 비자 면제 협정을 맺은 국가에 무비자 입국이 가능하다. 하지만 한국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에서도 한때 2009년 ‘한국 출생자로 20년 이상 거주 혹은 2대 이상 한국에 거주하는 화교에게 이중 국적을 부여’하는 내용이 논의됐으나 진전이 없는 상태다.

구자룡 기자 bon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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