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일 동안 2000건이 넘는 북한의 지도정보를 구글에 입력한 황민우 씨. 구글은 이런 정보를 모아 지난달 말 컴퓨터, 스마트폰 등으로 볼 수 있는 온라인 북한지도 서비스를 시작했다. 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
카페의 이름은 주인의 이름을 딴 ‘시눅’이었다. 주인인 시눅 아저씨는 친절했고, 커피 맛은 환상적이었다. 직접 커피를 기르고, 직접 수확해 로스팅까지 한다고 했다. 이렇게 맛있는 커피를 라오스에서 마시게 되다니…. 라오스가 유명 커피 산지라는 사실조차 몰랐던 황민우 씨(28)에겐 이때가 2009년 초 라오스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었다.
그 뒤 1년 이상 황 씨는 시눅 아저씨를 잊고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즐겨 보던 인터넷 강연사이트 ‘TED’에서 ‘구글 맵메이커’라는 서비스를 알게 됐다. 동영상 속에서는 구글의 엔지니어 랄리테시 카트라가다 씨가 세계인을 향해 “지도를 만들어 달라”고 호소했다.
“몰랐어요. 지구상의 육지에서 지도로 만들어진 건 15%뿐이라더군요. 어떤 곳에선 지도가 없어서 구호작업도 제대로 벌일 수가 없다니 안타까웠죠.”
2010년 5월이었다. 황 씨는 그날 밤 당장 구글 맵메이커 웹사이트에 접속했다. 일반인이 자원봉사로 지도 제작에 참여하는 사이트였다. 위성사진을 보고 마우스를 움직여 도로를 그리거나 특정 지점을 클릭해 장소 이름을 적어 넣는 사용법을 배웠다. 문득 시눅 아저씨가 떠올랐다. 황 씨는 ‘카페 시눅’을 구글 지도에 입력했다. 여행을 다녔던 동남아시아 곳곳도 둘러봤다. 그러다 자연스레 북한을 보게 됐다. 지도로 만들어지지 않은 85% 가운데 대표적인 지역이었다.
황 씨의 자원봉사 지도 입력 작업은 5일로 딱 1000일째를 맞았다. 첫 입력은 라오스의 작은 카페였지만, 이후에는 북한이 황 씨의 주된 관심사가 됐다.
1000일 동안 그가 입력한 지도 정보는 2088개. 일부 틀린 정보를 제외하고 모두 2007개의 지리 정보가 구글 지도에 반영됐다. 황 씨가 입력한 도로와 철도를 이으면 865km에 이른다. 보건복지부 장관 소속 한센인피해사건진상규명실무위원회에서 근무하는 황 씨는 지도 제작과는 전혀 관계없는 평범한 직장인이다.
구글은 황 씨 같은 보통 사람들의 작은 노력을 모아 지난달 말 정식으로 인터넷 북한 지도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 지도에서는 평양의 옥류관 냉면은 물론 영변 핵시설도 찾아볼 수 있다. 구글코리아는 지도 제작에 참여한 자원봉사자 가운데 황 씨가 가장 많은 정보를 올린 한국인이라고 밝혔다.
황 씨는 “취미 삼아 시간 날 때 짬짬이 입력한 것”이라고 겸손해했다. 하지만 입력 과정을 직접 지켜보니 쉬운 일이 아니었다. 황 씨는 정확한 정보를 입력하기 위해 정부가 만든 북한지역정보넷 웹사이트를 수백 차례 이상 드나들었고, 해외 웹사이트와의 비교도 거쳤다. 또 비교적 외국인이 많이 왕래해 정보가 어느 정도 입력된 평양 대신 평안남도 안주시, 함경남도 금야군 등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지역의 정보를 입력하는 어려운 길을 택했다. 지금은 아내가 된 당시의 여자친구가 “연애할 시간도 부족한데 아무런 보상도 못 받는 지도 입력에만 열을 올린다”며 화를 낼 정도였다.
물론 자원봉사자들이 만든 지도가 전문 지도 제작업체가 만든 것만큼 정확하기는 쉽지 않다. 구글 맵메이커로 만들어진 지도에서는 종종 오류가 발견된다. 하지만 다소 부정확한 지도라도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훨씬 낫다.
황 씨는 “전문가가 아닌 나 같은 보통 사람들이 참여한 덕분에 북한 지도 서비스 같은 수많은 지도 정보가 생긴 게 아닐까 생각한다”라며 “전문가들만 지도를 제작했다면 정확도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정작 입력되는 정보의 수는 얼마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