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정 아무리 딱해도 기준에 미달되면 퇴짜… 책상머리 복지공무원은 그만
저소득 아동엔 책상, 홀몸노인엔 반려식물 선물… 난, 발로 뛰는 ‘복지 아티스트’
민지선 성북구 희망복지지원단 복지연계팀장, 미술가 정선욱, 정선주 씨(왼쪽부터)가 버려진 목재를 모아 만든 ‘세상에서 하나뿐인 책상’ 앞에서 밝게 웃고 있다. 이 책상은 성북구 내 저소득층 아이들에게 전달될 예정이다. 유근형 기자 noel@donga.com
민지선 씨(여)는 1991년 7월 복지공무원으로 첫발을 디디면서 자신과 굳게 약속했다. 민원인에게 절대 상처를 주지 않겠다고. 자기를 희생해서라도 어려운 이웃을 돕는 복지공무원이 되겠다고. 당시 27세였다.
하지만 일선 현장은 민 씨가 꿈꾸던 모습과 달랐다. 주 업무는 현장보다는 책상에서 처리해야 했다. 민원인이 찾아오면 부정 수급을 막기 위해 의심 가득한 눈초리로 바라보게 됐다. 사정이 아무리 딱하고 어려워도 기준에 미달되면 돌려보냈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복지 공무원을 ‘기생충’이라고 표현한 이유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지금 서울 성북구 희망복지지원단 복지연계팀장으로 근무하는 민 씨는 이렇게 회상했다.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복지 공무원은 내가 그랬듯이 제도 중심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이었다. 탁상행정이라고 비판받는 공무원의 모습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던 것 같다.”
이런 복지 현장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찾아가는 원 스톱 복지’가 미래형 모델로 주목받으면서부터다. 지난해 5월 출범한 희망복지지원단(희망단)이 큰 계기가 됐다.
지방자치단체 복지 공무원이 일하는 풍경도 달라졌다. 사무실을 지키며 복지 신청을 받는 데 그치지 않는다. 대상자를 직접 찾고 새로운 사업을 만들어 내는 ‘복지 디자이너’이자 ‘아티스트’가 되지 않고는 살아남을 수 없게 됐다.
민 팀장은 이런 점에서 ‘복지 아티스트’의 선두 주자다. 희망단 발족 전부터 ‘동 단위 민관합동 복지협의체’를 만들어 복지 패러다임 변화를 이끌었다. 그는 “예산으로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민간시설, 종교단체, 주민, 자원봉사자 등 모두가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복지 공동체가 필요했다”고 말했다.
예컨대 성북구에서 긴급 지원이 필요한 대상자가 발견되면 동 단위 복지협의체가 먼저 움직인다. 기초생활수급자로 선정하고 건강보험에 등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최소 2주. 그때까지 마냥 기다릴 수는 없다. 동 단위 복지협의체는 긴급회의를 갖고 역할을 나눈다. 누구는 식사를 책임지고, 누구는 이불을 제공하고, 종교단체는 간병 자원봉사자를 파견하는 식이다. 이런 공로로 민 팀장은 5일 복지 분야 유공자 포장을 받았다.
복지 공무원은 새로운 사업도 만든다. 성북구 희망단이 구상한 ‘세상에서 하나뿐인 책상 지원 사업’이 대표적이다. 버려지는 목재를 모아서 지역의 미술가들과 함께 새 책상으로 만들었다. 이런 책상은 저소득층 아동에게 전달한다. 이 사업에 참여한 미술가 정선주 씨는 “꿈이 없고 공부엔 취미가 없는 아이들이 책상을 받아 들고 다시 꿈을 꾸게 됐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벅찼다”고 말했다.
홀몸노인에게 반려식물 선물하기, 기초생활보장수급자 가정 아동으로 구성된 뮤지컬 극단 운영, 굶주리는 이웃 발견하기 프로젝트…. 성북구 희망단이 그동안 모색하고 추진한 복지 사업이다.
김연명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바우처 제도 도입 이후 복지 수혜자가 소비자로 변했다. 정부 돈을 배분하는 ‘갑’으로서의 공무원은 살아남을 수 없는 환경이 조성됐다”며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맞춤형 복지를 위해서도 복지사의 변화는 필수적이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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