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댁서 고생할 아내, 집에선 내가 대접”
“필리핀 아내에게 한국의 맛 자랑하려…”
“아내 출장 갈때마다 곰국 먹기 지겨워…”
5일 서울 중구 필동1가에 있는 샘표의 요리교육 공간 ‘지미원’에서 남성들이 명절 요리를 배우고 있다. 올해 처음 열린 ‘남자들의 명절 요리교실’에는 경쟁률이 6 대 1에 가까울 정도로 많은 지원자가 몰렸다. 샘표 제공
“이번 설에는 아내를 위해 갈비찜을 해주고 싶습니다. 바로 위층에 사는 장모님께도 깜짝 선물로 드릴 거예요. 명절이면 시댁에서 묵묵히 일만 하던 아내에게 점수를 따야죠. 다 살기 위해 하는 것 아니겠어요. 하하.”
초록색 앞치마를 두른 직장인 최정섭 씨(37)는 당면을 볶는 게 생각만큼 쉽지 않아 애를 먹었다. 너무 오래 볶아 면발이 프라이팬에 달라붙었다. 잡채를 만들면서 떡만둣국의 간을 맞추느라 동분서주했다. 올해로 결혼 4년차인 최 씨는 “여러 번 유산해 몸과 마음이 지친 아내에게 요리를 해주고 싶은데 방법을 몰라 이곳에 왔다”고 말했다.
5일 저녁 식료품 제조업체 샘표가 운영하는 요리교육 공간 ‘지미원’. 샘표가 올해 처음 연 ‘남자들의 명절 요리교실’에는 최 씨와 비슷한 목표를 가진 남자 18명이 참석했다. 참가자들은 갈비찜 잡채 떡만둣국 등 세 가지 요리의 조리법을 배운 뒤 미리 준비된 재료로 실습했다. 다들 의욕이 넘쳤지만 실수가 이어졌다. 빚던 만두는 옆구리가 터지기 일쑤였다. 기름을 안 넣고 양파와 당근을 볶으려는 무모한 참가자도 있었다.
샘표는 18명을 선발하는 이번 요리교실에 105명이 몰렸다고 밝혔다. 6 대 1에 가까운 경쟁률을 뚫고 선발된 참가자들은 전원 출석했다.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박종일 씨(44)는 “더이상 곰국을 먹기 싫어서 요리교실을 찾았다”고 털어놨다. 출장이 잦은 아내가 해외에 나갈 때마다 곰국을 끓여놓고 가는데 하루 이틀은 먹어도 더는 못 먹겠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초등학생과 중학생 아이들에게 일주일 내내 곰탕만 주는 아빠가 되고 싶지 않았다.
박 씨의 목표는 이번 설 연휴에 고향인 대전에 내려가 만둣국을 끓이는 것이다. 남동생들에게 ‘요리하는 형’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요리교실을 찾은 남자들의 나이는 26∼60세로 다양했다. 요리를 배워야 하는 이유도 각양각색이었다. ‘내가 요리해야 하는 이유’를 제출한 참가자 중에는 필리핀에서 온 아내에게 맛있는 한국 음식을 만들어 주고 싶다는 다문화가정의 남편을 비롯해 명절마다 고생하는 맏며느리 아내에게 맛있는 음식을 먹여주고 싶다는 ‘애처가’ 남편, 아내와 자녀를 위해 요리를 해주고 싶다는 정년을 앞둔 직장인도 있었다. 아픈 어머니에게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대접하고 싶다는 효자도 있었다.
18개월인 늦둥이 딸을 위해 요리를 배우러 왔다는 ‘딸바보’ 유병현 씨(40)는 “맞벌이 부부라 집에서 자주 요리를 하는 편인데 볶음밥이나 미역국에서 더이상 진도가 나가지 않더라”라며 “이번 명절에는 잡채를 한번 해봐야겠다는 자신감이 생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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