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과 중국의 수교(1992년) 이래 가장 인상적으로 늘어난 ‘한국 속의 중국인’은 관광객과 유학생이다. ‘유커(遊客·관광객)’라는 말이 따로 생겨날 정도로 폭증하는 중국인 관광객들은 전국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유학생의 한국 내 체류 기간은 수년에 불과하지만 미래 한중 관계의 가교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
중국의 건강제품 네트워크판매 전문회사 신시대건강그룹은 다음 달 초 직원 1500명가량을 4박 5일 일정으로 제주도에 인센티브 관광을 보내기로 했다. 2006년 태국(1만 명)과 2012년 인도네시아(1500명)에 이어 올해는 제주도로 바꿨다.
신시대건강그룹 산하 중건국제그룹과 국내 ㈜에버케어의 합작기업인 중건코리아의 자오지예(趙繼業·30) 부사장은 “거리가 가깝고 한류의 영향 등으로 한국 여행을 선호해 올해는 제주도로 잡았다”고 말했다.
건강 및 생활용품업체인 바오젠(寶健)이 2011년 우수 대리상 직원 1만1200여 명을 여덟 차례로 나눠 한국에 보낸 이후 제주도가 중국 기업의 인센티브 관광지로 떠오르고 있다. 제주도는 2011년 7월 제주시 연동의 한 거리를 5년간 ‘바오젠로’로 지정했다. 바오젠은 올 9월에도 1만5000명가량을 보낼 예정이며 중국 암웨이는 내년 5, 6월 여덟 차례에 걸쳐 2만5000명을 보내기로 확정했다고 제주특별자치도 관광정책과 MICE 산업계 오창석 주무관은 말했다.
2008년부터 관광 목적의 중국인에 대한 무비자 입국이 허용된 뒤 대규모 ‘인센티브 관광객’까지 몰려 제주행 중국인 관광객이 폭증하고 있다. 2012년 중국인 관광객은 108만4094명으로 처음으로 100만 명을 넘었으며 전년 대비 증가율은 무려 90.1%였다. 전체 관광객 중 점유율도 64.5%로 일본의 10.7%(18만357명)에 비해 월등히 높다.
제주도는 ‘차이나머니’의 부동산 투자(2012년 미국을 제치고 1위)와 넘치는 중국인 관광객으로 곳곳에 중국어 안내판과 간판이 늘어나 ‘제주도의 중국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 제주와 중국 내륙의 25개 도시 간에 29개 노선에 직항 비행기가 뜨고 한중일을 잇는 크루즈 노선도 늘어나고 있다.
2002년 개항한 후 이용 승객이 없어 한때 외국 언론이 ‘유령 공항’이라고까지 불렀던 강원도의 양양국제공항. 현재는 중국 상하이(上海)와 랴오닝(遼寧) 성 다롄(大連)으로 각각 주 2회 국제선을 운항 중이며 올해 내로 광저우(廣州) 등 중국 내 6곳을 더 늘리기 위해 협의 중이다. 중국인 관광객이 ‘죽은 공항’을 살린 셈이다. 2009년 문을 닫고 있던 이 공항은 2010년 9014명, 지난해에는 2만3347명으로 늘었으며 올해는 8만5000명을 예상하고 있다고 최준석 강원도청 공항지원계장은 말했다. 강원도는 중국인 관광객 1명당 여행사에 1만 원씩 보조금을 주고 중국 전세기에는 편당 200만∼400만 원의 운항 장려금을 주는 등 적극적인 유치전략도 한몫을 했다.
중국인 관광객들은 그 규모와 증가 속도가 한반도의 구석구석을 바꾸고 있다. 백화점과 면세점, 대형 놀이공원, 스키장은 물론이고 서울시내의 많은 병원과 한의원에도 중국인 관광객을 위한 간판과 안내판을 내걸고 있다. 제주도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관광객 비자 면제가 이뤄지면 한반도가 ‘중국의 앞마당’으로 변할 수 있다는 예측도 나온다.
지난해 중국인 관광객은 283만6892명으로 전체의 25.5%를 차지해 351만8792명으로 31.6%를 차지한 일본에 이어 2위였다. 한국관광공사 한화준 중국팀장은 “올해 중국인 관광객은 300만 명이 넘을 것으로 추정되며 일본인 관광객을 처음으로 추월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지난해 ‘외국인 관광객 1000만 명 시대’를 연 것은 중국인 관광객들의 비약적인 증가가 큰 배경이 됐다. 한중 수교가 이뤄진 1992년 중국인 관광객이 8만6865명으로 전체 관광객의 2.7%(일본은 139만8604명으로 43.3%)에 불과했으나 21년 만에 33배가량 늘었다.
▼ 中유학생 5만9304명… 미래 한중우호 이끈다 ▼
지난달 22일 오후 3시 대전 배재대 아트컨벤션홀. 중국 유학생들이 500석가량의 좌석을 가득 메운 가운데 ‘2013 전한중국학인학자연의회(全韓中國學人學者聯誼會·CSSAK)’가 열띤 분위기 속에 진행됐다. 한중 수교 이듬해인 1993년 조직된 CSSAK에는 전국 102개 대학의 학생이 회원으로 참가하고 있으며 약 80개 대학에는 대학별 대표도 조직되어 있다.
이날 행사는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 각 대학의 중국 유학생들이 모여 노래와 춤, 악기 연주 등 공연과 한국 진출 중국 기업 및 일부 한국 기업이 제공한 경품 추첨 등으로 진행됐다.
웨이스제(魏世杰·35·건국대 국제경영학 박사과정) CSSAK 회장은 “춘제(春節·설)를 앞두고 고향을 가지 못한 학생들의 향수도 달래고 유학생활에서 겪은 경험과 정보도 공유한다”고 행사 취지를 설명했다. 이날 행사에서 한 학생은 콩트 대사 중 “나 자장면 배달 아르바이트 하는데 팁 안 주는 분들 너무 치사하고 쩨쩨해!”라고 유창한 한국어로 말해 넘치는 끼와 함께 한국어 실력도 과시했다.
법무부 ‘출입국 외국인 정책본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한국에 체류 중인 중국 유학생은 5만9304명(유학 4만5279명, 어학연수 1만4025명). 전체 외국인 유학생 8만4711명의 70%다.
교육인적자원부에 따르면 중국 유학생은 사이버대와 방송통신대를 제외하면 4년제와 전문대 대학원대 교육대 등 전국 296개 대에 재학 중(2012년 4월 기준)이며 중국 학생수가 1000명을 넘는 대학도 경희대 건국대 등 10곳에 이른다.
2011년 1월 CSSAK 7대 회장을 맡은 웨이 씨는 지린(吉林) 성 허룽(和龍) 출신으로 연변대 한국어학과를 졸업했다. 2002년 서울대 어학연수를 시작으로 한국에서의 유학생 생활이 10년이 넘었다.
CSSAK는 유학생 사회의 정보를 공유하고 10여 개 대학에서 도입하고 있는 건강보험을 확산시키는 등의 학생 복지 증진을 위한 활동을 한다고 리저(李喆·27·연세대 국문과 석사과정) CSSAK 부회장은 말했다.
한국에서 상당 기간 머물며 유학생활을 보낸 유학생들은 앞으로 한중 간 가교에서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리 부회장은 “한국 경제가 잘되고 한중 간에 교류가 늘어나야 한국에서 유학했던 중국 학생들도 직장을 구하거나 사회에 진출하는 데 유리하다”며 “한국에 온 유학생이나 유학하고 돌아간 사람들이 누구보다 한중 우호를 반긴다”고 말했다.
한국에 유학 온 학생이 오히려 더 혐한(嫌韓) 감정이 생긴다는 지적에 대해 웨이 회장은 “사물에는 양면이 있다. 이런 저런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학생들을 두루 만나 보면 80% 이상은 한국에 좋은 인상을 갖고 있다. 서로 부정적으로 보는 측면만 부각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다만 한국 학생이 중국 유학생을 서양 학생에 비해 차별하는 눈길도 없지 않다고 리 부회장은 말했다. 심지어 가난한 학생들이 유학을 왔다고 오해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웨이 회장은 몇 가지 애로점 중 학생들이 비자를 연장할 때 제출하는 서류가 담당자에 따라 다를 때도 있는 등 절차가 번거로운 것이 많이 거론된다고 말했다. 그 밖에 기숙사 시설확충이나 졸업 후 취업 정보가 더 많았으면 좋겠다는 의견도 많다고 전했다. 유학을 마치고 중국으로 돌아간 학생 중 대략 50%가량은 한국과 관련 없는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웨이 회장은 “지난해 12월에는 외교통상부 동북아국(박준용 국장)이 유학생 대표 30여 명을 초청해 간담회를 열고 애로 및 건의 사항을 듣는 등 중국 유학생에게 많은 관심을 보여 준 것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한국으로 오는 유학생 수가 줄고 있다. 한국 유학 후 취업 기회가 줄고 있고, 미국 유럽이나 일본 등으로 가는 유학생이 늘면서 분산되고 있는 것도 한 요인이다. 무엇보다 한국의 각 대학이 입학에 필요한 한국어 학습 능력 수준을 높이는 등 입학 기준을 강화하고 있는 것도 큰 요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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