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를 딛고 지난달 31일 미국 버클리음대 피아노퍼포먼스학과에 장학생으로 선발된 강상수 씨(24)가 꿈꾸는 미래다. 12일 오후 1시 반 서울 종로구 혜화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강 씨는 시각장애 1급이다. 선천성 녹내장을 앓다 시각장애특수학교인 광주세광학교 초등부 1학년 때 양쪽 시력을 모두 잃었다.
"전남 나주에 살던 다섯 살 때 어머니가 전자건반을 사주셨어요. 집 앞에서 농사를 지었는데 제가 혼자 건반을 치면 그걸 들으며 안심하고 일할 수 있다고 생각하신 거죠."
그는 악보를 볼 수는 없었지만 건반을 치는 재미에 빠져들었다. 학원에 다니며 계속 피아노를 배웠다. 한 번 들으면 거의 그대로 따라 칠 수 있는 뛰어난 청력이 큰 도움이 됐다. 장애인에게 음악을 들려주며 선교 활동을 하는 단체에서 활동하면서 '음악으로 사랑을 전하겠다'고 마음먹었다.
강 씨의 사연을 알게 된 학교 측은 충남 천안시 나사렛대 음악목회학과에 진학할 것을 권했다. 그는 대학에서 4년간 재즈피아노를 공부하면서 더 큰 세상을 꿈꾸게 됐다. 버클리음대 출신 지도교수들의 권유로 유학을 결심한 것. 지난해 2월 졸업한 뒤 혼자 서울에 올라와 버클리음대와 학점교류가 인정되는 음악아카데미를 다니며 음악과 영어를 배웠다. 작년 10월 미국에서 날아온 교수진 앞에서 실기와 면접시험을 치렀다.
강 씨는 지난달 버클리대 합격 통지를 받고 많은 생각이 떠올랐다고 했다. 대학 시절 음원만 듣고 따라 하기 어려운 곡을 직접 천천히 연주해 녹음해서 들려준 교수님들, 이론수업을 따라갈 수 있게 필기를 대신해준 친구들, 경제적 정신적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은 나사렛대 장애인센터의 멘토 선생님, 대학 입시 때 대학교수에게 저렴한 비용으로 지도받을 수 있게 도와준 광주세광학교 선생님들…. 모두 강 씨에게는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사람들이다.
장애를 가진 아들에게 세상의 따스함을 알려주고 항상 격려해준 부모님도 빼놓을 수 없는 존재다. 강 씨는 지금의 자신을 만들어준 많은 사람의 사랑을 잊지 않겠다고 했다.
"3년 뒤 한국에 돌아오면 장애인을 위한 음악선교 활동에 전념하고 싶어요. 언젠가 제 이름을 딴 장학회를 설립해서 형편이 어려워 음악 공부를 하기 힘든 친구들을 도와주면 더 좋겠고요. 받은 것 이상으로 돌려주고, 베푸는 삶을 살겠다는 게 제 꿈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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