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서로를 지켜주기 위해 노력하던 그 모습이 눈시울을 적시게 한다. 나의 동생, 보고 싶다.’
경기 포천소방서 119구조대의 한 동료 소방관이 13일 화재 현장에서 산화한 윤영수 소방교(33·가산안전센터)를 추모하며 내부 게시판에 남긴 글이다. 그는 기자와의 통화에서도 평소 친동생처럼 여겼던 윤 소방교의 죽음이 아직도 실감나지 않는 듯 말을 잇지 못했다.
윤 소방교는 이날 오전 포천시 가산면 플라스틱 공장 화재 현장에 출동했다가 천장이 무너지는 바람에 가족과 동료들 곁을 떠났다. 화재로 다친 사람을 돌보는 구급대원이지만 인력 부족으로 진압대원과 함께 화마와 싸우다가 참변을 당한 것이다.
윤 소방교와 동료 4명은 이날 오전 4시 19분경 가산안전센터에서 5km 떨어진 금현리 플라스틱 제조 창고의 화재를 진압하러 출동했다. 10분 뒤 도착한 현장에선 창고 2동이 이미 불길에 휩싸여 있었고 플라스틱이 타면서 나오는 유독가스도 심했다.
오전 6시 26분. 2시간이 넘는 사투 끝에 큰 불길은 잡았다. 윤 소방교는 지칠 대로 지쳤지만 혹시 인명 피해가 있을지 몰라 현장 수색에 나섰다. 그가 창고 안에 들어서는 순간 갑자기 건물을 받치던 기둥이 무너졌다. 천장에서 떨어진 시멘트 더미가 윤 소방교를 덮쳤다. 동료들이 병원으로 옮겼지만 그는 결국 숨을 거뒀다.
이번 사고는 소방인력 부족이 낳은 인재(人災)였다. 2006년 12월 임용된 윤 소방교는 구급대원으로 원래 화재 현장에서 다친 피해자와 소방대원을 응급처치하는 게 주 임무였다. 하지만 현장에 출동할 때마다 진압 인력은 늘 부족해 구급대원인 윤 소방교도 소방호스를 들 수밖에 없었다.
경기지역 소방대원 5950여 명 중 구급·구조대원을 제외한 화재 진압 대원은 3560여 명. 소방관 1인당 담당인구는 2004명으로 우리나라 평균(1208명)보다도 많고 미국(1075명)의 2배, 일본(820명)과 홍콩(816명)의 2.5배에 이른다.
윤 소방교가 근무한 가산안전센터는 전 직원이 17명으로 5, 6명씩 조를 이뤄 3교대로 근무한다. 화재신고가 접수됐을 당시 센터에는 진압대원 3명과 윤 소방교를 포함해 구급대원 2명이 전부였다. 이들은 펌프차 탱크차 등 소방차 2대와 구급차 1대를 타고 화재 현장에 도착했다. 진압 대원 3명 중 2명은 펌프차와 탱크차를 조작해 호스로 물을 공급했다. 진압 초기에 실제 호스를 들 수 있는 진압대원은 1명뿐이었다. 이 때문에 윤 소방교같이 화재 진압 지식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구급대원도 화재 진압에 나서 호스로 물을 뿌리고 잔불 정리를 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소방본부 관계자는 “소방인력이 워낙 부족하다 보니 불이 나면 구급대원이라고 해서 응급조치만 할 수는 없는 형편”이라며 “도내 34개 소방서 가운데 16개 소방서 62개 지역대는 여전히 하루 일하고 하루 쉬며 혼자 근무하고 있다”고 말했다.
윤 소방교는 2011년 결혼해 아내(29)와 100일이 갓 지난 아들을 둔 한 집안의 가장이다. 회사에서 쉬는 시간이면 휴대전화에 담긴 아들사진을 자랑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던 ‘아들 바보’였다. 2남 중 막내지만 의정부의 76m²(약 23평) 아파트에 홀어머니(63)를 모실 정도로 효심이 깊었다. 혼자 계신 어머니를 위해 일찍 퇴근할 때면 말동무가 돼 주고 자신의 용돈을 아껴 어머니에게 건네던 착한 아들이었다. 학창시절에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비를 충당하던 성실맨이었다.
포천소방서는 윤 소방교를 1계급 특진하고 옥조근정 훈장을 추서했다. 윤 소방교의 장례식은 15일 포천소방서장으로 치러지며 국립묘지에 안장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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