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봄방학. 몸이 근질거린다. 인터넷 도박사이트 접속은 교실에서 해야 제맛인데 집에서 혼자 하니 친구의 도움을 받기 힘들다. 딴 돈으로 ‘노페(노스페이스)’ 점퍼를 샀다고 무용담도 나누지 못해 개학날만 손꼽아 기다린다. 서울 송파구에 사는 고2 송인찬(가명) 군의 속마음이다. 송 군은 학교에 다닐 때면 아침에 해외 스포츠 경기 결과부터 확인했다. 학교에선 친구들과 경기를 분석하고 베팅 결과를 확인하느라 바빴다. 수업시간에는 스마트폰으로 도박 사이트에 몰래 접속했다. 성적은 당연히 곤두박질. 해롭다는 걸 알면서도 이젠 끊기가 어렵다며 이렇게 말한다. 》
“칠판이 도박 사이트, 분필은 베팅액으로 보인다. 돈을 따면 따는 대로 좋아서, 잃으면 마음이 상해서 계속 하게 된다.”
이처럼 교실에서 도박에 빠지는 청소년이 적지 않다. 동아일보는 정보보호 솔루션 개발업체인 지란지교소프트와 함께 ‘교실 도박’의 심각성을 분석했다. 스마트폰 유해물 차단 애플리케이션(앱)인 ‘엑스키퍼 모바일’의 차단 데이터를 확인하는 식이었다.
학기 중인 지난해 9∼12월, 10대 3721명을 대상으로 평일(월∼금요일) 시간대별 유해물 차단 결과를 보면 학교에 있을 시간대인 오전 8시∼오후 5시에 2520건이 집중됐다. 전체 차단 건수(5252건)의 48%에 이른다. 도박 앱 등 사행성 유해물이 전체 유해물 중 30% 수준으로 비중이 가장 크다.
김기연 지란지교소프트 부장은 “한 번 차단되면 다시 접속하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할 때 2520건은 상당히 많은 수치다. 특히 사행성 유해물 접속이 교내 유해물 접속 증가를 이끌고 있다”고 설명했다.
온라인 도박 가운데 가장 심각한 건 불법 스포츠 도박. 경기당 베팅액이 몇천 원, 많게는 5만 원이 넘는다. 이런 사이트는 접근 자체가 어렵지 않다. 휴대전화번호와 은행 계좌번호만 있으면 가입할 수 있다. 대부분 해외에 서버를 두고 수시로 도메인을 바꿔가며 영업한다. 국내에서 처벌하기 힘든 이유다. 서울 동작구 A고교 교사는 “수업 중에 스마트폰으로 도박 사이트에 접속하다 걸려 압수당하면 부모님 스마트폰을 가져와 접속하는 아이들도 있다”고 전했다.
온라인 도박은 오프라인 도박까지 부추긴다는 점에서 더욱 문제다. 동아일보 취재진이 서울 송파, 강동구 일대 중고교생 200여 명에게 물었더니 지난해 교실에서 한 번이라도 카드나 화투 등 도박을 했다는 학생이 21명에 이르렀다. 이 가운데 도박이 공부를 방해했다고 대답한 학생은 18명이었다.
교내 도박은 소위 ‘일진회(교내 폭력 서클)’가 돈을 빼앗는 명분으로도 이용된다. 일진인 김모 군(15)은 학교에 화투를 들고 다닌다. 점심시간이면 친구들을 모아 ‘섰다’를 한다. 이렇게 시작된 게임은 그가 이길 때까지 진행된다. 그는 “인터넷으로만 하던 도박을 실제로 하니 재밌고 돈을 따니 더 재밌다”고 했다.
서울 강동구에 사는 임지헌 군(16)은 “예전엔 동전 던지기가 돈을 뜯는 수단이었다면 요즘엔 포커나 화투가 유행”이라고 말했다. 일부 학생들은 도박 이야기를 다룬 ‘미드(미국 드라마)’나 웹툰이 유행하면서 교내 도박이 더 늘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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