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운전, 한국영화 중견감독 앗아가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2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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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1, 302’ 연출 박철수 감독, 횡단보도서 음주차량에 숨져
초범 가해자 합의 땐 집유 “美선 살인죄” 강력 처벌 여론

영화 ‘어미’ ‘301, 302’ ‘오세암’으로 국내외 평단의 호평을 받아온 충무로의 중견감독 박철수 씨(65)가 술 취한 운전자가 몰던 차에 치여 유명을 달리했다.

용인서부경찰서는 박 감독이 19일 0시 30분경 경기 용인시 죽전동의 한 횡단보도에서 운전자 A 씨(36)가 몰던 스타렉스 차량에 치여 숨졌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가해자 A 씨는 사고 당시 혈중알코올농도 0.092%로 면허정지에 해당하는 수준이었다. 경찰은 “A 씨가 이전에 음주운전으로 적발된 기록은 없다”고 말했다.

이처럼 음주운전자에 의한 사망사고가 잇따르는 것은 사법당국의 솜방망이 처벌이 원인이라는 지적이 많다. 이번 박 감독의 사고도 판례를 볼 때 A 씨가 유족들과 합의를 하면 집행유예로 풀려날 가능성이 크다. 서울서부지법은 지난해 9월 음주운전을 하다 행인을 치어 숨지게 한 33세 여성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초범이고 전과가 없는 점, 유족과 합의한 점”을 이유로 들었다. 광주지법도 지난해 1월 혈중알코올농도 0.206%의 만취상태에서 차를 몰다 사고를 내 조수석에 탄 친구를 숨지게 한 20대에게 같은 이유로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현행법에선 1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하도록 하고 있지만 이처럼 초범이고 합의만 한다면 감옥행을 피할 수 있다는 뜻이다.

치과의사 한모 씨는 13일 광주에서 혈중알코올농도 0.145% 상태로 벤츠를 몰다 신호대기 중이던 마티즈를 들이받았다. 밤늦게까지 식당 주방에서 일하면서 혼자서 자식들을 키우며 살아온 마티즈 운전자 최모 씨(55·여)가 그 자리에서 숨졌지만 한 씨는 구속되지 않았다. 수사를 맡은 광주북부경찰서 교통과장은 “구속과 불구속을 일률적으로 판단할 수 없다”며 “수사가 진행 중”이라고만 답했다.

선진국은 음주운전 사망사고를 ‘살인죄’로 보고 관용을 베풀지 않는다. A 씨가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서 같은 사고를 냈다면 집행유예 없이 최소 징역 15년을 선고받는다. 일명 ‘앰브리즈 법’으로 불리는 이 법은 15년의 형기를 채우기 전에는 가석방도 금지하고 있다.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장택영 수석연구원은 “일본도 음주운전 사망사고는 살인죄와 똑같이 처벌하고 영국은 최고 종신형에 처한다”며 “사고가 아니라 고의적인 범죄로 다뤄 엄벌해야 한다”고 말했다.

○ 박철수 감독은…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를 이끌었다. 1979년 ‘골목대장’으로 데뷔했다. 대종상 작품상을 수상한 ‘어미’(1985년)는 감각적인 화면으로 성매매 문제를 정면으로 다뤄 논란의 중심에 섰다. 이후 ‘학생부군신위’(1996년)로 백상예술대상 영화감독상과 몬트리울 영화제 최우수예술공헌상을 거머쥐며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불의의 사고로 숨지기 직전까지 제작에 매달렸던 ‘러브 컨셉츄얼리’는 박 감독의 40번째 영화가 될 예정이었다.

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음주운전#박철수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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