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어르신들 삶에 담긴 ‘대구의 근대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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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2월 21일 03시 00분


북성로 공구골목… 서문시장 호황기… 약전골목 변천사…

19일 대구 중구 동문동 패션주얼리타운에서 열린 생애사 열전 출판기념회에서 시민들이 어르신들의 기증품을 관람하고 있다. 중구는 기증품을 모아 내년 상반기 향촌동 근대문화재현관에 전시장을 열 계획이다. 장영훈 기자 jang@donga.com
19일 대구 중구 동문동 패션주얼리타운에서 열린 생애사 열전 출판기념회에서 시민들이 어르신들의 기증품을 관람하고 있다. 중구는 기증품을 모아 내년 상반기 향촌동 근대문화재현관에 전시장을 열 계획이다. 장영훈 기자 jang@donga.com
“내 삶이 이렇게 멋진 책으로 만들어지다니 꿈만 같다.”

허귀진 할머니(91·대구 중구 성내동)는 20일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책의 발간 소감을 이렇게 말했다. 허억(1889∼1956) 초대 대구시장 딸인 그는 일제강점기와 1950∼70년대 대구 근대역사를 사진과 자료를 곁들여 364쪽 분량에 담았다. 대구여자보통학교(현 서부초교)와 대구여자공립보통학교(현 경북여고) 시절 입은 교복과 학교 모습은 당시 상황을 잘 보여준다.

1950년 12월 아버지가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 결혼식 주례를 선 이야기도 나온다. 허억 전 시장은 당시 “신랑 육영수, 신부 박정희”라고 잘못 불러 하객들이 폭소를 터뜨렸던 이야기로 유명하다. 허 할머니는 “결혼식 장소가 계산성당이란 말이 있지만 사실은 중구 삼덕동 대구문화예식장(현 시청 주차장)”이라고 말했다.

허 할머니를 포함한 대구 중구의 ‘생애사(生涯史) 열전’ 사업이 첫 결실을 이뤘다. 중구는 20일 지역 근·현대사를 함께한 터줏대감 14명의 이야기를 담은 역사책 12권을 펴냈다. 지난해 3월부터 시작한 이 사업은 30년 이상 중구에 살고 있는 70, 80대 노인들이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산업화시대를 구술(口述)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중구는 참여한 주민들의 사진자료 등 기증품을 모아 전시장을 꾸미고 관광에도 활용할 계획이다.

책 주인공 14명은 대부분 평범한 이웃 할아버지와 할머니다. 북성로 공구골목 1세대인 배상용 할아버지(84)는 1960년대 미군 부대에서 나온 공구를 파는 노점으로 시작해 지금까지 공구골목을 지키며 대구를 바라본 모습을 이야기했다.

6·25전쟁 때 대구로 피란 온 박태규 할아버지(83)는 1950, 60년대 양복점을 운영하면서 대구 섬유산업 발전과 전국 상인들이 몰려든 서문시장 호황기에 대한 기억을 사진과 함께 그려냈다. 대구약령시에서 58년째 한약방을 하는 박재규 할아버지(82)의 책에는 약전골목 변화가 담겨 있다. 최해청 청구대 설립자(1905∼1977)의 아들 최찬식 씨(87)는 어릴 때 토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웃으로 살았던 민족시인 이상화와 부인의 모습, 계산동 일대 기억을 보여준다.

생애사 아카데미를 맡았던 박승희 영남대 교수(47·국문과)는 “이들의 삶이 비록 개인적인 이야기지만 지역 근대 역사를 보여주고 관광자원으로 활용할 가치가 있다”고 평가했다. 구술 작업을 한 연구공동체 ‘두루’의 이균옥 대표(55)는 “그들의 삶을 역사로 담아내는 것은 세대 소통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구는 앞으로 어르신 100명을 발굴해 숨어 있는 지역 역사와 생활 문화를 재조명할 계획이다. 이달 말까지 도심재생문화재단 홈페이지(djdrcf.or.kr)에서 1910년대 이후 중구 역사를 기억하는 70대 이상 어르신 30여 명을 모집한다. 문의는 재단 사무국(053-661-2335).

윤순영 중구 도심재생문화재단 이사장(중구청장)은 “어르신들의 생생한 현장 이야기는 중구에 대한 애정과 역사 정신이 담긴 작은 박물관이다. 진솔하고 감동 있는 생애 스토리가 쌓이면 대구만의 관광보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장영훈 기자 jang@donga.com
#대구의 근대역사#도심재생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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