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에 불리한 약관 은행이 비용 부담해야”
법원, 기존 판결 뒤집어… 5만명 유사소송 영향 주목
은행에서 담보대출을 받을 때 고객이 부담한 근저당권 설정비를 돌려받을 수 있다는 법원의 판결이 처음 나왔다. 이는 은행이 근저당권 설정비를 반환할 의무가 없다는 기존 판결을 뒤집는 것이다. 최소 5만여 명이 금융사를 대상으로 유사한 소송을 제기한 가운데 이번 판결이 미칠 영향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15단독부 엄상문 판사는 20일 장모 씨가 신한은행을 대상으로 “2009년 9월 대출을 받을 때 부담한 근저당권 설정비와 인지세 일부 등 75만여 원을 돌려 달라”며 낸 부당이익금 반환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엄 판사는 “대출상품 설명서의 내용만으로는 장 씨와 은행 사이에 근저당권 설정비를 누가 부담할지에 대한 실질적 개별 약정이 있었다고 보기 힘들다”며 “관련 법령의 취지상 은행이 부담해야 할 근저당권 설정비를 고객이 부담해 은행은 부당이득을 취했다”고 판결했다.
법원은 대출거래약정서와 근저당권 설정계약서에서 근저당권 설정비 부담 주체를 묻는 항목에 고객의 수기(手記) 표시가 없는 점을 들었다.
이번 소송을 대리한 법무법인 태산의 이양구 변호사는 “기존 판결에서는 원고의 수가 많았던 이유 등으로 근저당권 설정비 부담에 대해 금융회사와 고객 간 합의가 있었는지 증거 조사가 불충분했다”며 “이번에는 실제 계약서를 토대로 사실 관계를 정확하게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신한은행 측은 “최근 은행 측이 승소한 근저당권 설정비 소송과 같은 사안인데 이번 판결만 결과가 다르게 나왔다”며 “즉각 항소하겠다”고 밝혔다.
근저당권 설정비는 등기비와 법무사·감정평가 수수료 등 담보대출 시 발생하는 부대비용으로 통상 대출금 1억 원당 60만∼80만 원 정도다. 그동안 관행적으로 대출자가 부담해왔으나 공정거래위원회가 2011년 7월 금융사가 부담하게 관련 규정을 바꿨다. 이후 한국소비자원과 금융소비자원의 주도로 각각 4만2000여 명과 1만5000여 명이 집단으로 근저당권 설정비 반환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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