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겨울 강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19일 경기 동두천시 보영여중을 찾았을 때 이 학교 2학년 윤하영 양(15)과 졸업생 최미림(16), 차오름 양(16) 등 세 학생은 봄방학도 잊은 채 영어 프레젠테이션 연습에 열중이었다.
이들은 올 5월 미국 애리조나 주 피닉스에서 개최되는 세계적 규모의 청소년 과학대회 ‘국제과학경진대회(ISEF)’에 한국대표로 참가해 자신들의 과학연구 결과를 소개할 예정. 이 대회 출전권을 따는 자리로 지난달 29일 열린 ‘제4회 한국청소년과학창의대회(ISEF-K2013)’에서 이들은 구석기시대 주먹도끼의 형태와 석재의 관계를 물리과학적 방법으로 분석한 연구결과로 ‘물리 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역사교과서 속 소재와 과학탐구활동을 연결한 이들의 ‘창의적·융합형 탐구활동’ 노하우를 소개한다.
주먹도끼 관찰하며 생긴 의문점에 주목
말처럼 쉽지 않은 창의적, 융합적 발상. 이들은 무심히 지나칠 수 있는 사물에 물음표를 던짐으로써 창의적인 탐구주제를 끌어냈다. 2011년 1학기 교내 영재학급 체험학습 프로그램으로 방문한 전곡선사박물관(경기 연천군)을 방문했을 때였다.
“전곡리 주먹도끼를 유심히 살펴보니 도끼의 날 부분은 날렵하게 타제(打製·치거나 깨뜨려 만듦)됐지만 몸통 부분은 별로 깎이지 않고 두꺼운 모양을 한 이유가 궁금해 연구를 해보기로 했죠.”(최 양)
이후 연구를 위해 석장리박물관 대전선사박물관 동아시아고고학연구소 등 전국의 선사시대 박물관·연구소를 찾아다니는 사이 이들의 연구주제는 조금씩 발전해 물리과학의 영역과 닿았다.
“아시아와 유럽의 주먹도끼가 생김새가 전혀 다른 이유는 성분, 강도 등 석재의 특성에 따라 파괴패턴(부서지는 모양)이 달라지기 때문임을 알게 됐어요. 결국 이를 물리측정실험으로 증명하게 됐죠.”(윤 양)
주먹도끼 100개 만들며 과학원리 체득
궁금한 것이 있을 때 인터넷 백과사전이나 포털사이트를 이용하는 수준에 머물기 쉬운 중학생이 전문적인 과학실험을 진행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 규암 흑요암 플린트 등 도끼의 소재가 된 각종 석재의 물리적 특성을 조사하기 위해선 관련 분야 전문가의 도움이 절실했다. 이들은 연구주제와 관련한 논문의 저자인 한 국립대 자원에너지공학과 교수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e메일을 보낸 결과 적극적인 연구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이들은 구석기인의 입장이 돼 주먹도끼를 직접 만드는 작업에도 열심이었다. 이들은 전곡리 유적지 인근 임진강, 한탄강 등에서 가져온 돌로 100여 개 이상의 주먹도끼를 만들어보며 실제로 돌이 어떤 모양으로 깨지고 깎이는지를 수도 없이 관찰하니 물리적 이론을 몸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문화해설사 활동하며 ‘역사와 과학의 만남’ 전파
역사공부가 과학연구가 된 순간부터는 새로 공부해야 할 지식이 쏟아져 어려움도 있었다. 이들의 논문 제목에 포함된 용어인 ‘타제’를 비롯해 표면박리 전단파괴 취성도 인장강도 등 물리용어를 처음 접했을 때는 그 뜻을 추측하는 것조차 어려웠다. 하지만 그날 새로 공부한 내용은 탐구일지에 사진과 함께 모두 적고 모르는 내용은 더 조사하는 과정을 반복한 결과 이들이 이번 연구 활동과 관련해 작성한 탐구일지는 총 10권을 넘게 되었다. 힘에 의해 석재가 파괴되는 양상을 측정한 SHPB실험 등 물리과학적 실험과 이론을 비교적 단시간에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은 이 학교 송성호 과학교사의 권유로 수행한 ‘논문 읽고 요약하기’ 훈련이 큰 도움이 됐다. 50∼60페이지에 달하는 각종 연구논문을 10, 5, 1문장 등으로 요약하는 과제를 하면서 이들은 20편 이상의 국내외 학술논문을 독파할 수 있었다.
3개월 뒤 열릴 세계대회 준비로 분주한 요즘 이들은 지역 주민들에게 구석기 유물·유적에 담긴 과학적 비밀을 소개하는 일에 푹 빠져 있다. 이들이 처음 연구주제를 만난 전곡선사박물관에서 지난해 6월부터 주말마다 청소년 문화해설사로 활동하고 있는 것.
“역사교과서만 보는 학생들에겐 주먹도끼는 구석기, 신석기시대를 구분하는 ‘사물’이라는 점 외에는 다른 아이디어를 주는 소재가 되기 어렵겠죠. 하지만 저희가 박물관에서 주먹도끼를 눈으로 관찰하며 궁금증을 떠올린 것처럼 현장에서 다양한 체험을 하다 보면 창의적·융합형 탐구주제도 저절로 떠올릴 수 있답니다.”(차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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