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퉁 단속반 뜨자 “좀 봐달라” 읍소… “난, 손님” 오리발도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2월 26일 03시 00분


짝퉁천국 동대문 노점상… 단속 현장 따라가보니

22일 오전 서울 동대문시장 일대에서 서울시와 중구가 단속을 해 확보한 ‘짝퉁(위조상품)’을 단속반원이 살펴보고 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22일 오전 서울 동대문시장 일대에서 서울시와 중구가 단속을 해 확보한 ‘짝퉁(위조상품)’을 단속반원이 살펴보고 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쟤들(노점상)이 우리가 온 걸 눈치 챈 거 같은데요.” “그럼 바로 칩시다. 양쪽에서부터 몰고 가죠.”

21일 밤 12시, 서울 동대문시장 인근에서 단속 동선을 상의하던 서울시와 중구의 ‘짝퉁’(위조상품) 노점 단속반 옆을 붉은색 점퍼 차림의 청년이 힐끔거리며 지나갔다. 단속반과 안면이 있는 노점 판매상이었다. 신분이 노출됐다고 판단한 단속반은 곧바로 2개조로 나눠 노점상 골목으로 달려갔다.

무역액 8위이면서도 ‘짝퉁의 천국’으로 불리는 한국. 짝퉁과의 전쟁에 나선 단속반을 쫓아가봤다.

○ 뛰는 단속반 위에 나는 노점상

단속반의 첫 타깃은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주변 노점. 서울시 김현기 주무관 팀과 중구 정정기 주무관 팀은 각각 노점 양 끝에서 단속을 시작했다. 김 주무관이 들어간 노점상 골목에선 짝퉁이 아닌 것을 찾기 힘들 정도로 온갖 상품이 진열돼 있었다. 정교하게 만들어진 샤넬 루이뷔통 프라다 같은 명품 브랜드의 지갑, 핸드백부터 조잡한 로고가 찍힌 속옷까지 다양했다. 코오롱스포츠 등산복 같은 국내 브랜드 위조품도 있었다.

단속이 시작되자 노점상들은 강하게 저항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산다. 좀 봐 달라”는 읍소형부터 “난 그냥 구경하는 손님이다”라는 오리발형, “×팔, 잡아가려면 잡아가 봐”라고 버티는 생짜형까지…. 노점상들은 물건을 뺏기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버텼다. 실랑이가 벌어지는 틈을 타 주변의 다른 노점상들은 물건을 챙겨 줄행랑을 쳤다.

동대문 짝퉁 노점의 또 다른 본거지인 ‘라모도’ 쇼핑몰 앞쪽으로 단속반이 이동했지만 이미 단속 소식이 퍼진 탓인지 판매대 물건과 함께 노점상은 사라지고 없었다. 서울시 김 주무관이 “주인이 나타나지 않으면 불법 노점을 모두 철거하겠다”고 소리치자 한 남성이 나타났다. 노점 골목 ‘총무’라는 그는 “잘못했다. 협조하겠다”며 판매자들을 불러냈다. 주변에서 단속반을 지켜보던 노점상들이 하나둘씩 자신의 매대 앞에 섰다. 갑자기 순순히 단속에 응하는 것이 의아했다. 단속반원인 티파(TIPA·무역 관련 지식재산권보호협회) 소속 신모 팀장은 “협조하는 척하면서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빨리 단속반을 보내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어차피 단속반이 모든 노점을 단속할 수는 없으니 일단 적발된 노점들만이라도 빨리 협조해 단속 규모와 시간을 줄이자는 것. 단속반이 떠나야 장사도 재개할 수 있다.

이날 두 팀이 단속한 노점상은 모두 10명. 압수물품은 1010점이었다. 이들은 상표법 위반으로 입건돼 서울시 특별사법경찰의 조사를 받은 뒤 검찰에 송치된다. 압수물품은 모두 폐기 처분된다.

○ 동대문 노점 86%가 짝퉁

시장마다 특징도 있다. 동대문 상품은 주로 질이 낮은 중국산 짝퉁이다. 중국 위조상품 공장에서 만든 짝퉁이 동대문 노점을 거쳐 지방과 인터넷 쇼핑몰로 퍼져나간다. 도매 중심이어서 오후 11시부터 다음 날 오전 3시 정도까지 영업한다. 소매 위주인 명동과 남대문은 각각 중국 관광객과 일본 관광객을 주로 상대한다. 영업시간도 오후 4시부터 9, 10시까지다. 이태원에는 국내에서 만들어진 특A급의 상품이 주로 유통된다.

서울시가 상표법 단속반을 체계적으로 운영한 것은 석 달이 채 되지 않는다. 그것도 지난해 11월 30일 상표법 위반을 단속하는 특별사법경찰관(특사경)으로 서울시와 중구 공무원이 1명씩 지정된 게 전부다. 주한유럽상공회의소가 위조상품 판별을 위한 전문가 4명을 지원해 총 6명이 현장에 나선다. 서울시 김 주무관은 “이전에는 단속을 나가도 물건을 압수하기 어려웠고, 노점상을 직접 조사할 권한도 없었다”고 했다. 여전히 노점상에 비해 단속 인력은 터무니없이 적다. 서울시에서 단속을 담당하는 공무원은 모두 2명뿐이다. 이날 단속에서도 노점상들은 단속반이 보는 앞에서 물건을 빼돌리고 도망치기도 했다.

노점상들이 단속돼도 벌금 100만∼200만 원의 처벌에 그친다. 동대문 노점에선 짝퉁 지갑이 소매가로 15만 원 안팎에, 가방은 15만∼20만 원에 팔린다. 짝퉁 원가는 판매가의 10∼20% 수준이다. 2.25m² 크기 노점 한 곳의 하루 매출은 100만∼300만 원 정도로 단속반은 추정하고 있다. 하루만 장사해도 벌금을 벌 수 있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점주는 상표법 위반 전과가 4, 5개씩 있다고 한다. 중구 정 주무관은 “벤츠를 몰고 다니는 노점상을 붙잡은 적도 있다”며 “판매자로 잡혀오는 20, 30대 상당수는 이들에게 고용된 ‘바지사장’”이라고 말했다.

이날 단속반과 함께 둘러본 한국의 짝퉁 시장은 경제강국의 위상에 걸맞지 않은 부끄러운 모습이었다. 프랑스 브랜드 루이뷔통이 지난해 7∼8월 서울의 4대 시장(남대문 동대문 이태원 명동)의 노점을 조사한 결과 동대문시장 543개 노점 중 86%인 469곳에서 짝퉁을 팔고 있었다. 이태원은 전체의 57%, 명동은 35%, 남대문은 25%의 노점에서 짝퉁이 발견됐다.

박진우 기자 pjw@donga.com
#짝퉁#노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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