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경기]120가지 모습의 천자문을 쓰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2월 27일 03시 00분


서예가 전정우 씨 내달 8일부터 ‘천자 유희전’

서예가 전정우 씨가 120개의 서체로 천자문을 쓴 독특한 작품 전시회를 다음 달 8∼31일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연다. 인천시 제공
서예가 전정우 씨가 120개의 서체로 천자문을 쓴 독특한 작품 전시회를 다음 달 8∼31일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연다. 인천시 제공
“전정우의 ‘천자 굿판’은 인간이 하늘이고 사람이 땅이 되면서 하늘 땅 사람이 혼연일체가 되기를 기원한다.”(이동국 예술의 전당 선임 큐레이터)

고향인 인천 강화도의 폐교를 심은미술관으로 꾸며 14년째 운영 중인 심은(沁隱) 전정우 씨(65)가 다음 달 8∼31일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천자 유희전’을 연다. 전 씨는 이 전시에서 9년간 120종류의 서체로 쓴 천자문 등 작품 200점을 선보인다.

한문의 기본인 천자문을 여러 서체로 쓴 당대 명필은 드물다. 중국 원나라의 조맹부가 6개 글자체로, 당나라의 구양순이 3개 글자체로, 조선시대의 한석봉이 2개 글자체로 쓴 적이 있다.

전 씨는 2004년부터 무려 120체로 천자문을 완성했다. “개인전을 마친 뒤 앞으로 10년간 5체의 천자문을 써 볼 생각으로 천자문 서예를 시작했어요. 1개 글자체로 천자문을 쓰는 데 꼬박 2, 3일 걸리는데 히말라야 등반을 한 듯 기진맥진했지요.”

그는 은나라 갑골문자, 주나라 금문자 등 고문자와 시대별 서체, 한글 등 세상에 알려진 특이 서체로 천자문을 썼다.

그는 올 1월 11일 9시간 동안 천자문을 써 자신만의 ‘심은서체’를 탄생시켰다. “120종의 다양한 서체를 모방하면서 혼서(混書), 합체(合體), 혼합체(混合體)를 만들어 왔지요. 이젠 천자문 1개 작품에 120체를 모두 녹여내니 서예 평론계에서 서체의 패러다임을 바꾼 ‘심은서체’가 나왔다고 합니다.”

이날 14장의 대형 한지(총길이 13m)에 쓴 천자문은 ‘농필(弄筆) 천자문’으로 불린다. 전 씨가 ‘글씨와 마음에 취해 한바탕 놀았다’는 의미에서 이런 이름을 붙였는데, 당시 너무 몰아지경이어서 다음 날에야 이 천자문을 쓴 사실을 알았다고 한다.

서예가 전정우 씨가 자신의 서체인 ‘심은서체’로 쓴 작품 ‘자승(自勝)’. 자승은 스스로를 극복한다는 뜻이다. 심은미술관 제공
서예가 전정우 씨가 자신의 서체인 ‘심은서체’로 쓴 작품 ‘자승(自勝)’. 자승은 스스로를 극복한다는 뜻이다. 심은미술관 제공
이번 전시회에 우나라 성왕이 얘기했다는 ‘석촌음(惜寸陰)’이란 작품도 출품된다. ‘한 치의 그림자도 아껴라. 찰나조차 소중하게 여기라’는 뜻인데 금문, 목간, 추사체, 전서, 예서 등 획마다 서체를 달리해 세 글자에 총 10체를 녹여 넣었다.

한자나 한글이 아닌 회화와 유사한 작품도 있다. 그는 10년 전부터 ‘아름다운 동행’이란 시리즈로 글자를 추상화처럼 그려 왔다. 그는 이번에 시리즈 ‘衆 20’에서 ‘무리 중(衆)’자를 바탕으로 추상화와 같은 글씨를 썼다. 글씨 색채도 빨강 파랑 노랑 등 화려하게 꾸몄다. 그는 “정치권 갈등, 노사 대립, 빈부 격차, 세대 차이를 줄이고 모두 함께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런 글을 썼다”고 설명했다.

전 씨는 10여 년간 삼성그룹에 다니다 1986년 그만두고 서예의 길로 나섰다. 삼성 설립자 고 이병철 회장이 그의 글씨에 반해 “최고의 서예가가 되어 달라”고 격려했고 1987년 동아일보 주최 동아미술제 미술상, 대한민국 미술대전 대상을 받았다. 정관계, 재계의 여러 인사가 전 씨로부터 서예 지도를 받았다. 송영길 인천시장도 2년간 그의 지도를 받아 상당한 수준에 오른 상태다. 전 씨의 작품은 2014년 인천에서 열릴 아시아경기대회에서 전시될 예정이다.

박희제 기자 min07@donga.com
#심은#전정우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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