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오후 제주 제주시 조천읍의 작은 화산체인 부대악오름 주변 분화구. 20여 마리 야생 노루가 어슬렁거리며 떼 지어 나타났다. 말을 사육하기 위해 조성한 목장의 풀을 여유롭게 뜯어 먹었다. 100여 m까지 접근해도 고개를 들어 눈치만 살필 뿐 달아날 기색이 없었다. 인기척에 익숙한 듯했다. 10여 년 전에는 한라산 고지대에서 생활하던 노루들이 겨울철 저지대에서 생활하다 봄이 찾아오면 다시 고지대로 돌아갔으나 지금은 저지대에 정착했다. 잔디가 새로 돋아나는 골프장 주변은 노루의 새로운 서식처가 됐다. 먹이가 풍부한 제주시 구좌읍, 애월읍 지역 밭 주변에서도 노루들이 자주 보인다. 콩, 당근, 무 등의 새싹을 마구 뜯어 먹으면서 농민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농작물 피해가 심각해지면서 노루를 유해동물로 지정해 인위적으로 포획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환경단체, 동물보호단체 등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제주도의회 환경도시위원회는 3년 동안 노루를 유해 야생동물로 지정해 포획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제주특별자치도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 조례안’을 25일 통과시켰다. 이 조례안이 28일 본회의를 통과하면 7월 1일부터 3년 동안 유해 야생동물에 노루가 포함돼 총기류, 올무 등으로 노루를 포획할 수 있다.
제주도는 조례가 공포되면 노루 생포 작업에 돌입할 예정이다. 총포를 사용한 노루 사냥이 아니라 그물 등을 사용해 밭 주변 노루를 우선 잡는다. 이들 노루를 기존에 조성한 제주시 봉개동 노루생태관찰원에 수용한다. 추가로 서귀포시 성산읍 수산2리 궁대악오름 주변 55만 m²에 새로운 노루생태관찰원을 만들 계획이다. 이곳에 콩, 무 등의 종자를 뿌려 자연스럽게 먹이를 섭취하도록 할 방침이다. 노루생태관찰원 운영 평가 등을 거쳐 개체 수 조절을 위한 적정 방안을 찾는다.
제주지역 야생 노루는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멸종위기에 놓였으나 1980년대 중반부터 먹이 주기, 밀렵 단속, 올가미 수거 등 다양한 보호 활동을 펼치면서 개체 수가 늘었다.
제주녹색환경지원센터가 2011년 5∼11월 해발 600m 이하인 지역을 대상으로 조사한 노루 개체 수는 1만7700여 마리로 나타났다. 100만 m²당 노루의 적정밀도는 8마리로 알려졌지만 제주지역 노루 분포는 해발 500∼600m 45.6마리, 해발 400∼500m 36.7마리 등으로 나타났다.
노루 개체 수가 늘면서 농작물 피해도 덩달아 극심해졌다. 참깨, 메밀, 더덕, 감자 등의 밭작물은 물론이고 감귤, 감, 매실 등의 과실수와 산딸나무, 벚나무 등의 관상수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다. 지난해 제주지역 271개 농가가 201만 m²에 8억5300만 원의 피해가 발생했다고 신고했으나 현장조사를 거쳐 제주도가 지급한 보상금은 3억3200만 원에 불과했다. 농민들은 피해예방시설, 설치비를 늘려도 피해가 반복된다며 포획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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