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노원경찰서 형사들이 지난달 상계동 뉴타운 재개발 현장에 있는 곱창 공장에 들이닥쳤을 때 내부는 공사장에서 날아온 먼지로 가득했다. 39m²(약 12평) 남짓한 작업장은 벽돌과 슬레이트로 만든 무허가 건물이었다. 정화시설이 없어 돼지 내장 등 오물이 하수구에 수북이 쌓여 있었다. 작업장 바로 옆엔 공중화장실이 있었다. 남성 소변기에선 지린내가 진동했다.
이곳에서 만든 돼지 곱창은 서울, 경기지역 곱창 전문 프랜차이즈 음식점 20여 곳에 납품됐다. 2011년 10월부터 1년간 납품한 곱창이 무려 166t. 7억9000만 원어치다. 이 체인점은 지상파 방송 프로그램에서 맛집으로 소개돼 손님이 붐비는 가게로 알려져 있다. 6일 경찰에 입건된 공장 업주 서모 씨(39·여)는 지난해에도 비위생 시설에서 곱창을 만들어 팔다 벌금형을 받은 전과가 있다. 벌금만 내고 자리를 옮겨 똑같은 짓을 한 것이다. 서 씨는 재범이지만 불구속 상태로 경찰 조사를 받았다.
경찰청은 설 전후 한 달간 불량식품 제조·유통사범을 집중 단속해 서 씨 등 569명을 적발했다고 26일 밝혔다. 유해성분이 들어간 불량식품 판매사범이 84명, 병든 가축을 도축해 판 사람이 73명, 원산지를 거짓으로 표시한 경우가 117명이다.
불특정 다수의 건강에 피해를 주는 중범죄지만 이번 단속으로 구속된 사람은 단 2명(0.3%)이다. 경찰은 중국산 물엿과 옥수수 전분, 칡뿌리를 산양산삼이라고 속여 판 업자도 불구속 입건하는 데 그쳤다. 이 업자는 창고에 추출기 5대를 설치해 무려 21억 원 상당의 가짜 산양산삼을 만들었고 이미 7억600여만 원어치를 설 명절 선물용품으로 전국에 유통시켰다. 유통기한이 10일 넘게 지난 닭 1만2000마리를 냉동해 시골 장터와 닭고기 가공 공장 등에 유통시킨 업자도 불구속 입건에 그쳤다.
박근혜 대통령이 새 정부 중점과제로 ‘불량식품과의 전쟁’을 선포했지만 위해식품 사범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이 여전해 실효를 거두기 힘들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2012년 사법연감을 보면 2011년 식품위생법 위반으로 법원에 기소된 1261명 가운데 1심에서 징역형이 선고된 사람은 5명(0.4%)에 불과했다. 집행유예는 72명(5.7%)이었고 벌금형이 774명(61.4%)으로 가장 많았다. 냉면에 유해성분인 타르 색소를 넣어 칡냉면으로 둔갑시킨 업자는 수천만 원의 부당이득을 취했지만 벌금은 50만 원만 부과된 사례도 있었다.
현행 식품위생법은 위해식품을 만들어 팔거나 병든 동물의 고기를 판매한 사람은 7년 이하 징역이나 1억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식품 안전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면서 형량은 종전 5년에서 2011년에 7년으로 늘었지만 실제 판결에선 기존의 솜방망이 처벌이 반복되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의 행정처분도 무력하긴 마찬가지다. 2011년 식품위해업체에 내려진 3318건의 행정처분 가운데 영업 취소나 영업장 폐쇄는 고작 1%인 34건이었다. 나머지 업자들은 잠시 일을 쉬거나 과징금만 낸 뒤 바로 장사를 이어갔다. 영업장 폐쇄 처분을 받아도 법인이나 대표자 이름만 바꾸면 언제든 동일업종을 다시 할 수 있다.
처벌이 두렵지 않은 탓에 불량식품 업자의 재범률은 36.5%에 이른다. 식약청과 경찰청의 2004∼2008년 식품위생사범 단속 현황을 보면 5년간 적발된 2만5928건 중 9472건이 재범이다. 이들 중 3∼6회 위반한 비율이 96%에 달했다. 중앙대 식품공학과 하상도 교수는 “불량식품으로 얻는 경제적 이익에 비해 치러야 할 대가가 미미하기 때문에 불법의 유혹을 떨치기 힘든 것”이라고 지적했다.
식약청은 지난달 불량식품을 제조, 판매한 업체에 10배의 과징금을 부과하는 방안을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보고했다. 새누리당 김태원 의원도 ‘7년 이하 징역에 1억 원 이하 벌금’인 처벌조항에 ‘징역 1년 이상’ ‘벌금 1000만 원 이상’의 하한선을 두는 식품위생법 개정안을 냈다.
법체계와 사회의 현실을 감안해야 하기 때문에 제도화가 빨리 이뤄지긴 쉽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이형주 한국식품안전연구원장은 “식품사범들이 대부분 영세한 생계형 업주여서 사법당국으로선 처벌을 무작정 강화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황선옥 소비자시민모임 이사는 “노약자가 위해식품을 먹으면 치명적일 수 있다. 불량식품 업자들에 대해선 온정주의에서 벗어나 일벌백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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