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습이 끝나고 ‘이건 내 일이 아니다’라고 생각했죠. 사회복지사도 엄연히 전문가인데, 한없이 퍼주는 자원봉사자로만 여기는 한국 사회에서는 제대로 인정받기 힘들다고 느꼈어요.”
서울의 모 대학 사회복지학과 출신 노모 씨(25·여)는 2010년 서울 서대문구 대현동의 한 사회복지관에서 실습을 마쳤다. 사회복지사가 되기 위해 필요한 현장 실습 160시간을 꽉 채웠다. 세상을 바꾸겠다는 포부를 갖고 사회복지사를 꿈꿨지만 현장에서 바라본 현실은 처참함, 그 자체였다. 오전 9시∼오후 6시로 규정된 근무시간은 서류에서만 있는 일일 뿐 매일 4∼5시간은 더 일하고 있었다. 이런 격무 속에서 100만 원대 월급을 받으며 살아가는 복지사들이 오히려 복지가 필요한 계층으로 보였다. 현실을 목격하곤 대기업으로 진로를 바꾼 노 씨의 말이다.
“사회복지학을 공부하면서 ‘좀 더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자’는 목표를 세웠어요. 하지만 이렇게 힘든 삶을 참아가며 일할 필요가 있는지 회의감이 들었죠.”
졸업 전 복지센터에서 실습을 끝낸 학생 중 적지 않은 수가 현장의 고통을 생생히 관찰하고는 사회복지사의 꿈을 접는다. 미래 한국의 복지 첨병인 사회복지학과 학생들이 어깨너머로 지켜본 것만으로도 복지사의 삶은 너무 험난했다.
김영화 경북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한때 사회복지학과가 전망 좋다고 손꼽힐 때가 있었지만 옛말”이라고 했다. 국가가 복지정책을 늘리면서 사회복지 수요가 늘고 정책은 쏟아졌지만 사회복지사 처우는 나아진 게 없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실습 다녀온 학생들이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하다 꿈을 포기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복지 서비스는 정신력과 육체적 에너지가 모두 필요하다. 그 어느 직업보다 ‘젊은 피’가 절실한 이유다. 일선 사회복지사와 교수, 사회복지사협회가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부분은 ‘얄팍한 연봉’이다. 지방자치단체별 편차도 크다. 민간시설에서 활동하는 사회복지사 임금은 기준을 알 수도 없을 정도로 제각각이다. 10년차 복지사 월급이 200만 원도 안 될 정도로 전반적인 연봉 수준이 낮은 것도 문제다. 이봉주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초봉도 낮은 데다 임금이 올라가는 속도도 상당히 늦어 경력이 쌓일수록 사기가 떨어지고 이직률이 높아진다”고 말했다.
올겨울 서울 용산구 복지기관에서 실습했던 정모 씨(24)는 전국 1% 안에 드는 수능 성적으로 사회복지학과에 진학할 때까지만 해도 ‘돈보다는 보람을 택하겠다’는 부푼 꿈을 안고 있었다. 하지만 실습기관에서 만난 사회복지사들마다 “봉급이 적어 생활하기 어렵다”며 울상인 모습을 보자 슬슬 걱정이 됐다. 정 씨는 “아직도 사회복지사를 하고 싶은 마음은 남아있지만…”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사회적인 인식도 개선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학습비와 휴가비 등 사회복지사의 복지를 지원하는 중부재단의 김세경 팀장은 “복지사를 자원봉사자로 착각해서 쉴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는 시민들의 의식 수준이 아쉽다”고 말했다. 이 단체는 한 해 평균 3000만 원의 예산으로 복지사들의 휴가를 지원하는 사업을 9년간 운영해왔다. 근속 3년 이상인 복지사면 신청이 가능하다. 3∼4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선발되면 안식월을 보낼 수 있다. 해당 복지사가 손을 놓은 업무를 대체할 인력 고용 비용 120만 원을 중부재단에서 지원한다.
사회복지분야 공무원들의 처우를 개선해 복지행정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모든 업무가 일선 사회복지사에게 몰리는 ‘깔때기 효과’를 없애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담당 공무원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데다 중앙정부, 지자체뿐 아니라 사회복지와 직접 관련이 없는 기관에서도 복지에 관련된 정책을 세우면 실행책임은 모두 일선 사회복지사들에게 떨어지는 게 현실이다. 이봉주 교수는 “우선 복지담당 공무원을 늘리는 것이 필요하며 일반 공무원과 업무를 나눠 부담을 줄이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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