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송파구 잠실종합운동장 주경기장 앞 보도에는 165m에 달하는 ‘올림픽 스타의 길’이 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부터 2004년 아테네 올림픽까지 각 올림픽 메달리스트들의 대형 사진을 담은 전시벽 23개가 설치된 이 길에서 유독 눈에 띄는 것이 있다. 금메달을 따기 직전의 감격적인 순간을 유일하게 입체로 재현한 동상(사진)이 그것이다.
길을 따라 질주할 것 같아 보이는 이 동상은 1936년 8월 9일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경기에서 일장기를 단 채 금메달을 딴 고 손기정 선수 동상이다. 동상 받침대에는 ‘망국의 한을 우승으로 승화시킨 슬픈 올림픽의 승리자. 그는 한국인의 민족 영웅이자 지구촌 체육인의 자랑으로 언제나 우리와 함께 영원히 달린다’라는 글귀가 한국어, 영어, 독일어로 새겨져 있다. 작품 이름은 ‘세계 제패의 순간’. 2006년부터 길 입구를 지키고 있다.
손기정기념재단(이하 재단)은 손 선수의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제패 70주년을 맞아 2006년 2월 동상 제작에 들어갔다. 서양화가인 강형구 재단 이사장과 그의 지인인 조각가 박철찬 씨가 힘을 합쳤다. 이들은 당시 사진을 바탕으로 손 선수가 결승선을 통과하는 순간을 높이 250cm의 동상으로 재현했다. 동상은 같은 해 8월 9일 서울광장에서 공개됐고 이후 이 길로 옮겨졌다.
그런데 동상은 손 선수가 결승선을 통과할 때와 다른 게 있다. 오른쪽 가슴의 일장기가 태극기로 바뀌었다. 얼굴 표정도 조금 더 역동적으로 표현했다. 강 이사장은 “손 선수가 생전에 ‘42.195km를 완주한 찰나의 순간에 힘겨움과 환희, 민족의 아픔, 서러움 등 온갖 감정을 다 느꼈다’고 늘 말해 왔다”라며 “그 감정을 사람들이 더 많이 공감할 수 있도록 실제보다 표정을 조금 과장했다”고 했다.
독일 베를린의 주독 한국대사관 앞에도 이 동상과 똑같은 동상이 있다. 재단은 2006년 당시 동상을 두 개 제작해 하나를 베를린 올림픽주경기장이나 경기장 인근의 올림픽 기념관에 전시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기념관 측이 동상 관람객이 거의 없는 후미진 곳을 설치 장소로 내줘 재단은 동상 설치를 미루기로 했다. 동상은 적당한 장소가 마련될 때까지 당분간 주독 한국대사관 앞을 지키며 손 선수가 한국인이었다는 사실을 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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