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계 기업에 다니는 ‘골드미스’ 이모 씨(39)는 2년 전 회사 근처인 서울 강남에 원룸을 얻어 독립했다. 그는 “업무상 야근과 출장이 잦은데 과년한 나이에도 매번 부모님께 허락을 구하는 게 불편했고, 마침 남동생 부부가 집에 들어와 살게 되면서 독립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이 씨는 독립했지만 금요일에는 퇴근 후 부모가 사는 집으로 가 일요일 저녁까지 함께 시간을 보낸다. 그는 “주중에 늘 외식을 하다 보니 집에서 먹는 밥이 그립고, 조카들도 보고 싶어 자연스레 주말을 함께 보내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 씨처럼 일주일의 절반은 독립된 생활공간에서, 나머지 절반은 가족들과 함께 지내며 ‘두 집’ 살림을 하는 이가 적지 않다. 이와 함께 주5일제 근무로 주말에 여행이나 야외활동으로 집을 비우는 싱글족도 늘면서 ‘0.5인 가구 이코노미’가 뜨고 있다.
‘0.5인 가구’란 싱글족 가운데 2곳 이상에 거처를 두거나 잦은 여행과 출장으로 ‘노마드(nomad·유목민)’적 삶을 사는 이들을 일컫는다. 국내 1인 가구가 1990년 9.0%에서 지난해 25.3%로 증가하면서 0.5인 가구 역시 크게 늘어난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이들 ‘0.5인 가구’는 어차피 집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적기 때문에 일반 싱글족보다 작은 집에 사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가전제품, 가구, 생활용품을 살 때도 1인 가구용 제품보다 더 작고 간소한 제품을 선호한다. 부동산 시장에서 전용면적 12∼14m²인 도시형 생활주택, 16m² 규모의 오피스텔 등 초미니 주택이 느는 것도 0.5인 가구 증가와 관련이 있다.
이마트가 선보인 지름 16cm 프라이팬과 14cm 편수냄비(손잡이가 하나인 냄비) 등 미니 주방용품의 지난해 매출은 1년 전보다 30.5%나 늘었다. 1인 가구를 겨냥해 지름 18cm 편수냄비와 20cm 양수냄비 등 4종 세트를 판매하던 주방용품 업체 네오플램은 이달 말 16cm, 18cm로 크기를 더 줄이고 냄비 하나를 뺀 3종 세트를 내놓을 예정이다. 이재준 네오플램 과장은 “수납공간 때문에 더 작은 제품을 원하는 고객이 많아 초미니 제품을 개발했다”고 말했다.
현대홈쇼핑은 ‘글라스락’ 세트에 들어가는 수납용기를 66개에서 절반으로 줄인 패키지를 내놓았다. 그 결과 방송 1회당 평균 매출이 약 2억2000만 원에서 3억 원으로 늘었다. 오픈마켓인 11번가 관계자는 “거처에 집착하지 않는 0.5인 가구는 이사도 자주 다니기 때문에 가전제품도 크기가 작은 것을 선호한다”고 전했다.
애경의 클렌징 전문 브랜드 ‘포인트’는 이달 초 ‘이동하는 현대인’ 콘셉트에 맞춰 편의점 전용 제품인 ‘미니 클렌징 키트’ 3종을 내놨다. 생활용품 업체인 애경에스티는 소형 주택에 신발장이 따로 없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고려해 부츠에 직접 넣어 사용하는 제습제 ‘홈즈 제습력’을 내놓았다. 이 제품의 1, 2월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2배로 늘어났다.
이장혁 고려대 교수(경영학)는 “결혼을 포기하거나 미루는 싱글족이 늘면서 ‘0.5인 가구’도 함께 늘고 있다”며 “가처분소득이 많고 라이프스타일이 1인 가구와 다소 다르기 때문에 앞으로 산업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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