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TV 드라마 ‘야왕’의 남자 주인공 하류(권상우 분)는 시체 유기 혐의로 교도소에서 복역하다 4년 만에 출소한다. 이 장면에서 하류는 오랜 세월에 빛이 바랜 붉은 벽돌 담장 가운데 있는 교도소 철문을 열고 세상에 나온다. 교도소는 성곽처럼 길게 이어진 붉은 담에 둘러싸여 있어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지난해 종영한 KBS 2TV 드라마 ‘착한남자’에도 이 건물이 나왔다. 강마루(송중기 분)를 칼로 찌른 혐의로 복역한 안민영(김태훈 분)이 출소하는 장면이 이곳에서 촬영됐다. ‘광복절 특사’ ‘숨’ ‘이끼’ ‘투사부일체’ ‘집행자’ 등의 영화와 드라마 ‘더킹 투 하츠’ ‘드라마의 제왕’ ‘다섯손가락’ ‘빛과 그림자’에는 이 건물의 내부 수감시설까지 등장한다. 재연 프로그램 ‘신비한 TV 서프라이즈’(MBC)는 재소자가 등장하는 모든 장면을 이곳에서 촬영했다.
교도소처럼 보이는 이 건물은 서울 서대문구 독립공원에 있는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이다. 일제가 1908년 애국지사들을 수감하기 위해 근대식 감옥인 경성감옥으로 만든 건물이다. 경성감옥에서 서대문감옥, 서대문형무소, 서울형무소, 서울교도소, 서울구치소로 이름이 바뀌는 동안 많은 애국지사와 민주화 열사가 이곳을 거쳐 가거나 이곳에서 생을 마감했다. 유관순 열사가 옥고를 치르다 순국한 곳도 여기다. 1987년 11월 서울구치소가 경기 의왕시로 이전하면서 수감의 역사는 끝났지만, 역사의 현장을 보존하려는 뜻이 모여 1998년 역사관으로 재탄생했다. 이후 역사 교육의 현장이자 영상물 촬영의 메카로 자리매김했다. 역사관 관계자는 “30만 원을 내면 건물 안팎을 2시간 동안 촬영할 수 있다”며 “한 달에 10여 차례 촬영장소 섭외 문의가 온다”고 했다.
이 역사관에서 주로 촬영이 이뤄지는 것은 실제 교도소 촬영 허가가 거의 나지 않기 때문이다. 교도소 정문이나 주차장에서만 제한적으로 촬영이 허락되는 게 고작이다. 교정시설 내부가 공개되면 보안 문제가 발생할 수 있고 촬영 장비 중 상당수가 교도소 반입이 금지된 물품이어서다.
역사관에서도 촬영 허가가 나지 않는 곳이 있다. 바로 사형장이다. 구치소 이전 후 한때 사형장에서도 촬영이 가능했지만, 일부 업체가 사형장에서 옷 광고나 개그 영상을 찍어 논란이 된 뒤에는 일절 금지됐다. 역사관 관계자는 “사형장은 역사의 아픔이 깊이 배어 있는 곳”이라며 “사형이 집행된 분의 유족들이 문제의 영상을 보고 충격을 받을 것을 우려해 촬영을 금지하고 있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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