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사시대 바위그림인 울산 울주군 언양읍의 반구대 암각화(국보 제285호). 하류에 건설된 사연댐 때문에 1년에 7, 8개월은 물에 잠겨 있지만 보존 대책은 아직 마련되지 않고 있다. 울산시 제공
“암각화 앞 생태제방 설치안이 경관 훼손을 최소화하면서 암각화 침수를 막는 방안이다.” 13일 오후 울산시청에서 열린 반구대 암각화 보존을 위한 수리모형실험 연구 최종 보고회. 용역을 맡은 사단법인 한국수자원학회 이승호 연구원(홍익대 교수)은 수리모형실험 결과를 이같이 발표했다. 하지만 문화재청 등 문화계에서는 이 방안에 반대하며 하류의 사연댐 수위를 낮춰야 한다는 종전의 주장을 고수하고 있다. 10여 년째 계속된 반구대 암각화 보존 대책이 또다시 표류할 개연성이 높아진 것이다.
이번 용역은 울산시의 의뢰로 지난해 6월 5일부터 9개월간 진행됐다. ‘사연댐 수위 조절안’(문화재청)과 ‘생태제방 또는 유로 변경안’(울산시)이 팽팽히 맞서 암각화 보존 대책이 접점을 찾지 못하자 울산시가 용역을 맡겼다.
문화재청은 해발 60m인 사연댐 수위를 암각화 침수 수위(52m) 이하로 낮추자고 주장하고 있다. 생태제방 또는 터널형 유로 변경안은 암각화 앞에 친환경적인 제방을 쌓거나, 암각화 앞 야산에 터널을 뚫어 물길을 돌리자는 것.
용역팀은 암각화 주변의 지형을 50분의 1로 축소한 모형을 만들어 실험했다. 먼저 사연댐 수위 조절안. 실험 결과 이 방안은 암각화 앞의 물 흐름이 수위 60m인 현재는 초속 0.3∼0.5m지만 52m로 낮출 경우 2.98∼3.15m로 약 10배 빨라졌다. 유속이 빨라지면 물의 흐름 방향도 암각화 쪽으로 쏠리게 돼 바위가 깎이는 암면 세굴(洗掘)과 부유물에 의한 암면 탈락 등으로 훼손 가능성이 높다고 용역팀은 밝혔다. 또 수위를 낮춰도 1년에 홍수기 1, 2일은 암각화가 침수되고, 모세관 현상으로 암각화가 항상 젖어 있는 상태가 발생한다고 덧붙였다.
생태 제방안은 암각화에서 80.66m 떨어진 곳에 제방(높이 10∼15m, 길이 450m)을 쌓는 것. 사연댐의 기능을 유지하면서 암각화 침수를 막을 수 있고 터널형 유로 변경안에 비해 환경 훼손이 적은 것으로 평가됐다. 다만 제방 축조로 주변 경관이 훼손되고 통풍이 안 돼 암각화 암면에 이끼가 발생할 수 있다는 문제가 제기됐다.
터널형 유로 변경안은 암각화 위 200m와 아래 270m 지점에 각각 제방을 쌓아 물길을 차단한 뒤 암각화 앞에 터널(길이 170m, 직경 15m) 두 개를 설치하는 것. 사연댐의 기능을 그대로 유지하고 암각화 침수를 영원히 막을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그러나 반구대 암각화 상류에 위치한 청동기시대 유적인 천전리 각석(국보 제147호)의 침수 위험이 높아지고 주변 경관을 훼손하는 등의 문제점이 있는 것으로 지적됐다. 또 용역팀은 “터널형 유로 변경안은 생태 환경 변화로 식생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으나 생태 제방안은 환경 변화가 거의 없는 방안”이라고 밝혔다. 결국 세 가지 가운데 생태 제방안이 가장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문화재청 권석주 유형문화재과장은 “울산시가 그동안 주장해 왔던 생태 제방안은 암각화 주변의 환경을 훼손하기 때문에 반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사연댐 수위를 먼저 낮춘 뒤 울산시민의 물 부족분은 정부 차원에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권 과장은 이 같은 생각을 최종 보고회에서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반구대 암각화를 최초로 발견한 동국대 문명대 명예교수는 지난달 “암각화 앞에 제방을 쌓으면 통풍이 안 돼 암각화에 이끼가 끼고 풍화작용이 빨라져 훼손이 심해질 것”이라는 태도를 분명히 했다.
반구대 암각화
사람 고래 사슴 등 300여개의 그림이 새겨진 선사시대 바위 그림. 발견되기 5년 전인 1965년 하류에 축조된 사연댐 때문에 매년 갈수기를 제외하고는 물에 잠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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