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rrative Report]벼랑 끝에 선 사람들 그의 손끝에서 희망의 끈을 잡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3월 14일 03시 00분


3년간 음독자살 시도한 560여 명 치료 서울아산병원 손창환 교수

김복수 루디아화원 대표(오른쪽)는 사업 실패를 비관해 음독자살을 시도했다. 하지만 서울아산병원 응급실에서 손창환 교수의 치료로 목숨을 건졌다. 이를 계기로 손 교수와 김 씨는 병원에서, 또 화원에서 만나며 소중한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서울아산병원 제공
김복수 루디아화원 대표(오른쪽)는 사업 실패를 비관해 음독자살을 시도했다. 하지만 서울아산병원 응급실에서 손창환 교수의 치료로 목숨을 건졌다. 이를 계기로 손 교수와 김 씨는 병원에서, 또 화원에서 만나며 소중한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서울아산병원 제공
《 환자는 피를 토해 냈다. 한 스푼가량? 몸을 심하게 떨었다. 입에서는 냄새가 났다. 비릿한 아몬드 같은. 의식은 없었다. 숨은 가늘게 이어졌다. 42세 조모 씨는 그런 상태에서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응급실에 도착했다.

지난달 12일 밤 11시였다. 응급의학과 손창환 교수(39)는 맹독성 물질인 청산가리임을 한눈에 알았다. 기도를 연 후 위를 씻어 내고 해독제를 썼다. 조 씨가 의식을 찾았다. 음독한 지 6시간 만이었다. 13일 오후 6시에는 산소마스크를 뗐다.

사경을 헤매다 깨어난 그가 입을 열었다.“돈이 없으니 빨리 나가게 해 주세요.” 》

음독 환자 살려냈더니 “돈 없는데…”

조 씨는 4남 1녀 중 3남으로 태어났다. 집은 지독하게 어려웠다. 가난은 불운과 함께 찾아왔고, 불운은 전염병처럼 집안을 휩쓸었다. 아버지는 그가 어렸을 적에 세상을 떠났다. 맏형은 스무 살이 되던 해, 오토바이 사고를 당했다. 후유증이 심해 일을 하지 못했다. 둘째 형은 자살했다. 조 씨는 금세공 기술을 배웠다. 비정규직으로 전전하며 생계를 꾸렸다. 간신히. 하루하루가 힘들었다. 79세 노모를 모시는 것도 그의 책임. 카드 빚이 늘어났다. 아내가 곁을 떠났다.

설 연휴 다음 날인 12일 밤, 보일러의 기름 연료통이 바닥을 드러냈다. 자기 인생도 바닥이라고 생각했다. 평소 금을 다듬으며 모았던 청산가리를 꺼냈다. 캡슐 형태였다. 어머니와 함께 단숨에 들이켰다. “편안한 하늘나라에 가자”는 약속과 함께.

모자(母子)는 우연히 집에 들른 이웃에게 발견됐다. 음독 30분 만에 서울아산병원 응급실로 실려 왔다. 사고나 큰 부상을 당하고 생사의 갈림길에 서는, 하지만 회복이 가능한 시간을 의료계에서는 ‘골든타임’이라고 한다. 독극물 중독의 골든타임은 1시간. 위에서 소화된 후 인체에 본격적으로 흡수되기 전에 처치해야 한다.

독극물 환자가 오면 의료진은 어떤 물질인지 파악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적절한 해독제를 신속하게 사용하면 목숨을 살린다. 응급 해독제는 전국 14개 응급의료센터가 비축하고 있다. 서울에서는 서울아산병원이 유일하다. 조 씨 모자에게는 행운이었다. 목숨을 구했으니까. 하지만 조 씨는 지독히 운이 없다고 생각했다. 엄청난 치료비를 내야 하니까.

돈이 없으니 퇴원시켜 달라…. 손 교수의 머리에 30여 년 전의 일이 떠올랐다. 알코올의존증 환자인 아버지가 응급실에 실려 갔다. 치료비를 내지 못해 아버지 대신 병원 원무과에 잡혀 있었다. 조 씨의 얼굴에서 자신의 옛 모습을 봤다.

손창환 서울아산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삶이 어려울 때면 더 어렵게 살아야 했던 아버지를 떠올린다고 한다. 그는 “생활고로 자살을 시도한 환자를 보면 ‘또 다른 아버지’, ‘또 다른 나’처럼 느껴진다”며 “그들을 치료하는 데 멈추지 않고 그들이 진정 힘을 내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고 말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손창환 서울아산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삶이 어려울 때면 더 어렵게 살아야 했던 아버지를 떠올린다고 한다. 그는 “생활고로 자살을 시도한 환자를 보면 ‘또 다른 아버지’, ‘또 다른 나’처럼 느껴진다”며 “그들을 치료하는 데 멈추지 않고 그들이 진정 힘을 내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고 말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손 교수는 대구 출신이다. 어린 시절, 지독한 가난에 시달렸다. 아버지는 동업자에게 사기를 당하면서 평생 거액의 빚을 갚으며 살았다. 어머니는 이혼하고 가족을 떠났다. 아버지와 손 교수, 그리고 두 살 어린 남동생 창욱 씨(37). 셋이 의지하며 살았다.

아버지는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했다. 하지만 술에 너무 의존했다. 과음으로 병원 신세를 질 때가 잦았다. 치료비가 없으니 초등학교 저학년인 어린 장남이 원무과에 볼모로 남는 경우가 많았다.

“불우이웃 성금이나 쌀을 걷을 때 아이들이 ‘창환이를 도와주자’고 할 정도였어요. 비싼 치료비는 언감생심이죠. 지금처럼 병원이 사회적 약자를 지원하던 시절도 아니었고요. 아버지가 퇴원 후 간신히 돈을 빌리거나 벌어서 치료비를 내고 저를 찾아가셨죠.”

간경화 아버지-가난에 멍든 어린 시절

가난 때문에 구겨진 자존심. 다행히 손 교수 형제는 공부를 잘했다. 시험을 볼 때마다 보란 듯이 1등을 했다. 자존심을 회복했던 이유다. 손 교수는 경북대 공대, 동생은 서울대 공대에 합격했다. 형제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비를 마련했다.

손 교수는 공대를 졸업하고 경북대 의대에 다시 진학했다. 하루라도 빨리 돈을 벌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의학을 공부하기로 했다. 아버지 때문이었다. 알코올의존증이 간경화로 악화됐다. 꾸준히 치료를 받아야 했다. 의사가 되면 아버지를 치료하기가 수월해진다, 나중에 간 이식도 가능하겠지, 아버지만 생각하자…. 하루에도 수십 번씩 이렇게 다짐했다.

의대를 졸업하고 서울아산병원에서 인턴과 레지던트 과정을 밟았다. 더 좋은 환경에서 아버지께 간 이식을 해 드리려는 생각에서다. 하지만 아버지는 2005년 간경화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손 교수는 방황했다. 아버지를 생각해서 의대에 갔지만, 아버지를 치료하지 못했다는 아쉬움과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모든 걸 때려치우고 싶었다. 이런 시절에 응급의학에 대해 알게 됐다. 2008년 응급의학과 전문의 자격을 땄다. 이후 독극물 중독을 전담했다.

“사실 아버지로 인해 응급실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이 많아요. 그런데도 이상하게 이 일이 끌렸어요. 특히 음독 자살을 시도했다가 실려 온 사람들을 보면 마음이 아팠죠. 저들은 어떤 사연으로 여기까지 왔을까 싶어서요.”

그가 만난 독극물 중독 환자의 상당수는 생활고에 시달리다 음독한 사례였다. 3년간 치료했던 환자 800명 가운데 70%가 목숨을 끊으려고 독극물에 손을 댔다. 생활고와 독극물. 손 교수에게는 그들의 사연이 또 다른 아픔으로 다가왔다.

“환자를 간신히 살려 냈다고 쳐요. 그러나 그들은 더 불행할 수 있어요. 돈이 없어 죽음을 택했는데 죽지도 못했죠. 게다가 거액의 치료비까지 내야 합니다. 자살 시도는 스스로 택했다는 이유에서 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어요.”

조 씨는 응급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았다. 5일간이었다. 그에게 청구된 진료비는 이틀 만에 500만 원이 넘었다. 그나마 정신과 진단을 통해 ‘정신질환으로 인한 자살’로 판정돼 건강보험 혜택을 받게 됐다. 그렇게 해도 100만 원 이상을 내야 한다. 어머니 진료비는 별도.

해결 방법이 없을까. 지난해 9월에 치료했던 40대 여성 김모 씨가 떠올랐다. 그 역시 자살을 시도했다. 오랜 지병으로 우울증에 시달리던 환자다. 매일 1알씩 먹던 치료제를 통째로 입에 털어 넣었다. 가족이 빨리 병원으로 옮겨와 응급처치를 받고 목숨을 건졌다.

김 씨는 퇴원하는 날, 손 교수에게 300만 원을 건넸다. 자신을 가족처럼 대해 준 데 대한 감사의 표시였다. 손 교수는 돈을 받는 대신 “음독을 하는 환자 대부분이 생활고로 자살을 시도한다. 환자를 돕는 데 쓰는 게 어떻겠느냐”고 권했다.

손 교수는 김 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게 주려던 300만 원을 청산가리 자살을 시도한 조 씨와 어머니의 치료비로 쓰면 어떻겠어요?” 김 씨가 흔쾌히 승낙했다. 그 덕분에 조 씨 모자는 병원비를 한 푼도 내지 않고 치료받았다. 조 씨의 어머니는 건강을 회복하고 퇴원했다. 조 씨는 정신과 병동에서 입원 치료 중.

몸의 해독은 기본… 마음까지 치료해야

“생활고로 자살을 시도한 사람은 병원에서 살려 내도 다시 시도할 개연성이 큽니다. 경제 여건이 좋아지지 않아서죠. 몸에 남은 독극물만 해독하는 의사가 아니라 그들이 다시 자살의 유혹에 빠지지 않고 새로운 삶을 살도록 도와주는 의사가 되고 싶었어요. 그래야 제 치료가 의미가 있으니까요.”

손 교수는 환자들과의 끈을 놓지 않는다. 2년 전 사업 실패를 비관해 자살하려던 김복수 루디아 화원 대표(43)와는 호형호제(呼兄呼弟)하는 사이가 됐다. 손 교수는 자신의 집 화단 수리를 김 대표에게 맡겼다. 화원에 자주 찾아가 꽃을 산다. 김 대표 또한 종종 병원에 들러 이야기를 나눈다. 이번에 300만 원을 기부한 김 씨와도 자주 문자를 주고받는다.

손 교수에게는 소박한 꿈이 있다. 동생과 함께 ‘형제는 용감했다’라는 책을 내려고 한다. 창욱 씨는 서울대 공대를 졸업하고 넥슨재팬 개발팀장과 프리챌 대표이사를 지냈다. 지금은 벤처기업 미투온의 대표.

“그 책에 아버지가 남긴 수필을 넣고 싶어요. 당신께서는 고등학생 시절 서울행 비둘기호 기차에서 볼펜을 팔았던 기억을 글로 남기셨어요. 그토록 고생하면서도 열심히 살려고 애썼던 아버지의 이야기를 함께 넣고 싶어요. 또한 자살을 시도하는 많은 사람에게 희망을 주고 싶어요. 그들이 잘 살아갈 최소한의 터전을 마련해 주는 일이 행복한 나라를 꿈꾸는 사람들의 몫이니까요.”

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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