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한국 사회의 경조사 건수가 2000년 이후 가장 많았지만 경기침체로 지갑을 닫는 가구가 늘면서 경조비를 포함한 ‘가구 간 이전(移轉)지출’은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가구 간 이전지출이 감소한 것은 관련 통계가 집계되기 시작한 2003년 이후 처음이다. 또 소비와 투자 감소로 ‘장롱 속 현금’이 늘면서 가계 여유자금은 9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18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2인 이상 가구의 가구 간 이전지출은 월평균 20만7310원으로 2011년 20만8709원보다 0.7% 감소했다.
가구 간 이전지출 중 조의금(弔意金), 축의금 등 경조비와 세뱃돈 등 교제비(交際費)를 합한 비중은 70% 정도다. 가구 간 이전지출은 2003년 월평균 14만2369원에서 2011년 20만8709원으로 꾸준히 늘다가 지난해 처음 줄었다.
지난해 한국의 사망·결혼건수가 59만4400건으로 1999년 60만6000건 이후 13년 만에 가장 많았는데도 경조비 등이 포함된 가구 간 이전지출이 감소한 것은 경기침체의 영향으로 풀이된다. 통계청 관계자는 “경조비는 물가상승 등이 반영돼 3만 원 내던 것을 5만 원 내는 식으로 액수가 늘면서 매년 증가 추세를 보여왔다”면서 “지난해 경조비 지출이 줄어든 것은 경기 위축으로 씀씀이가 줄어든 영향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전지출 감소는 형편이 어려운 중산층 이하 가구들에 집중됐다. 중간소득층에 해당하는 소득 상위 40∼60% 가구의 지난해 이전지출은 17만119원으로 2011년 17만8031원보다 4.4% 줄었다. 또 소득 하위 20∼40% 가구는 전년 대비 1.4%, 소득 최하위 20% 가구는 3.6% 감소했다. 반면 소득 최상위 20% 가구의 이전지출은 지난해에 40만1862원으로 2011년(39만6140원)보다 1.4% 늘면서 처음으로 40만 원 선을 넘어섰다.
한편 장기화되는 경기침체로 소비와 투자가 줄면서 지난해 한국 가계의 여유자금은 관련 통계가 집계되기 시작한 2003년 이후 가장 많아졌다.
이날 한국은행이 내놓은 ‘2012년 중 자금순환’ 자료에 따르면 작년 ‘가계 및 비영리단체’의 자금잉여는 86조5494억 원으로 2011년의 54조9035억 원보다 31조6459억 원 늘었다. ‘가계 및 비영리단체’에는 일반 가구와 소규모 개인사업자, 소비자단체, 자선·구호단체 등이 포함된다. ‘자금잉여’란 이들이 보유하고 있는 현금과 예금 등 금융자산에서 은행 대출 등으로 빌린 자금을 뺀 것이다.
자금잉여 규모가 크게 늘어난 것은 부동산 및 주식시장 침체로 소비나 투자를 하지 않고 미래에 대비해 쌓아둔 자금이 늘어난 데 비해 가계빚 증가세는 둔화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가계 및 비영리단체의 주식 순(純)투자는 같은 기간 5조4000억 원에서 ―8조 원으로, 예금은 80조1000억 원에서 57조2000억 원으로 급감했지만 보험·연금에 쌓아둔 자금은 56조6000억 원에서 2012년 89조1000억 원으로 대폭 증가했다. 현금 등 기타 자금 역시 1조8000억 원에서 3조 원으로 증가했다. 기업들도 투자를 기피하면서 지난해 자금 부족 규모가 59조9000억 원으로 2011년 76조9000억 원보다 크게 감소했다.
또 지난해 가계 기업 정부의 금융자산 총액은 5194조8000억 원으로 6.4% 늘었으며 금융부채는 3607조3000억 원으로 4.9% 증가했다. 특히 국내 기업의 금융부채는 2011년보다 78조4000억 원 늘어난 1978조9000억 원으로 2000조 원에 육박했다. 다만 자산건전성을 나타내는 금융자산 대비 금융부채 비율은 113.4%로 2011년(113.1%)에 비해 소폭 개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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