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생산직 25년간 월급 모아 1억 기부’ 미담 알고보니…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3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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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혐의 재판 아들 선처노린 ‘꼼수’

올해 1월 50대 후반의 대기업 생산직 사원이 1억 원을 기부해 훈훈한 감동을 줬다. 그러나 이 기부 행위는 그런 순수한 행동이 아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울산의 한 지역신문 19일자 2면에는 기부자인 박우현 씨(57)와 그의 아들 박기연 씨(29) 공동 명의의 ‘사과문’ 광고가 게재됐다. 사과문은 “1억 원을 기부한 것은 맞지만 기탁자는 박우현이 아니다. (아들) 박기연이 직장생활을 하면서 올린 합당하지 못한 수입을 사회에 환원하기 위해 아버지가 아들을 대신해 기탁한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현대중공업은 2월 4일 보도자료를 통해 이 회사 소속 박우현 씨가 1988년부터 25년간 근무하며 모은 1억 원을 1월 28일 울산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대한적십자사 울산지사에 각각 5000만 원씩 기부했다“고 밝혔다. 박 씨는 당시 언론 인터뷰에서 “6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나 힘든 유년기를 보내며 남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면서 “그 고마움을 가슴에 담고 살아오면서 언젠가는 남을 도와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밝혔고, 미담의 주인공이 됐다.

그러나 실상은 달랐다. 박 씨의 아들 기연 씨는 사문서 위조, 사기 등의 혐의로 지난해 12월 구속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었다. 아들의 변호사는 “부당 이득금을 사회에 기부하면 정상 참작으로 형량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권유했다. ‘아버지를 대리인으로 내세워도 된다’는 변호사의 얘기를 듣고 아버지 박 씨는 자신의 이름으로 기부를 했다.

그런데 바뀐 변호인은 ‘본인 명의로 기부해야만 참작될 수 있다’고 했다. 결국 박 씨는 아들이 실제 기부자라는 광고를 내게 된 것이다. 아버지 박 씨는 아들이 구속돼 있어 어쩔 수 없이 자신의 명의로 기부한 것이라고 설명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기부금을 받은 울산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대한적십자사 울산지사는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울산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5000만 원을 지난달 22일 울산 지역의 한 무료급식소에 주고 영수증까지 받은 상태. 울산사회복지공동모금회 박용훈 사무처장은 “이미 기부금을 집행했기 때문에 돈은 돌려주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대한적십자사는 이달 중으로 박 씨를 초청해 기부금 전달식을 가질 예정이었다. 대한적십자사 울산지사 유성열 사무처장은 “기부 당시 부부가 25년간 모은 돈을 기부한다고 해서 ‘특별행사’까지 준비했다. 그런데 사실과 다르다니 당혹스럽다”고 말했다. 적십자사는 박 씨의 기부금이 순수한 기부금과는 거리가 멀다고 보고 환불 여부를 논의하기로 했다.

울산=정재락 기자 raks@donga.com
#기부#선처#울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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