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3초면 2층까지… 범죄용 사다리 된 가스배관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3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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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세대 침입 성폭행 9건 ‘가스관타기 꾼’ 구속

2월 28일 서울 은평구의 한 주택가에서 검정 비니 모자를 눌러 쓴 남성이 가스관을 타고 다세대주택 2층에 침입하려 한다는 신고가 경찰에 접수됐다. 경찰이 출동했으나 이 남성은 이미 사라진 뒤였다.

경찰은 인근 폐쇄회로(CC)TV에 찍힌 영상을 단서로 11일 박모 씨(56·경기 고양시)를 검거했다. 박 씨가 추가 범행을 저질렀을 개연성을 염두에 둔 경찰은 이 일대에서 발생한 유사 범죄를 조사하다가 깜짝 놀랐다. 박 씨는 전과 14범의 속칭 ‘가스관 타기 꾼’이었다.

그는 2년간 240여 차례 가정집에 침입해 5억 원 상당의 금품을 훔친 혐의(야간주거침입절도)로 2003년 12월 구속됐다. 당시 ‘낮엔 건축업자 밤엔 도둑’이라는 제목으로 본보에 보도되기도 했다.

그는 2007년 출소한 뒤에도 범죄를 계속하다 2008년 다시 구속됐다. 2010년 다시 출소한 그는 2011년 10월부터 이달 4일까지 은평구 서대문구 마포구 일대에서 16차례에 걸쳐 가정집에 침입해 4600여만 원 상당을 훔친 것으로 드러났다.

더 놀라운 것은 박 씨가 이 16차례의 절도 외에도 여성 혼자 사는 집에 침입해 성폭행을 일삼아 온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2002년부터 올해 1월까지 이 지역에서 발생한 성폭행 미제 사건 가운데 9건이 DNA 검사 결과 박 씨의 소행으로 밝혀졌다. 성폭행을 저지른 기간 동안 경찰에 절도로 두 차례 구속됐지만 2010년 7월 관련법이 시행되기 전까지는 절도범의 DNA 정보를 동의 없이 수집할 수 없었기 때문에 박 씨의 성범죄가 드러나지 않았던 것.

서울 서부경찰서는 박 씨를 강도강간 및 상습절도 혐의로 구속했다고 19일 밝혔다. 박 씨는 과거 건설업자로 일해 번 돈으로 BMW 오토바이를 타고 13억 원 상당의 땅을 소유하고 있는 자산가로서 아내와 두 딸을 둔 가장이다. 그러나 남의 집에 몰래 들어가는 것에 쾌감을 느껴 범행을 멈추지 못했다.

박 씨의 범행 도구는 아파트나 다세대주택 외벽에 설치된 ‘가스관’이었다. 운동을 꾸준히 해 온 박 씨가 가스관을 타고 2층으로 올라가는 데는 불과 2, 3초밖에 걸리지 않았다. 초저녁 무렵 BMW 오토바이를 타고 돌아다니며 범행 장소를 물색했고 범행 장소에도 오토바이를 타고 갔다. 가스관을 타고 발코니 창문으로 접근하기 좋은 다세대주택 2층을 주로 노렸다. 담이나 주차된 승합차를 딛고 올라가기 좋은 곳도 대상에 포함됐다. 발코니 창문이 잠겨 있을 때는 준비해 간 드라이버를 문틈으로 넣어 잠금고리를 풀고 들어갔다. 밖에서 불이 꺼진 것을 확인하고 집으로 들어갔다가 잠든 사람이 있으면 깨지 않도록 조용히 물건을 훔쳐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집 안에 여성이 혼자 있으면 성폭행했다.

이처럼 아파트나 다세대주택 외벽에 설치된 가스관을 이용한 범죄가 끊이지 않고 있다. 8일에는 충남 서산시에서 전국을 돌며 가스관을 타고 아파트에 침입해 9차례에 걸쳐 6060만 원 상당의 현금과 귀금속을 훔친 김모 씨(41) 등 2명이 경찰에 구속됐다.

가스관을 타고 오르는 수법의 범죄는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지 않아 절도범들이 쉽게 노린다는 게 경찰의 분석이다. 실제로 직접 가스관을 타 본 한 경찰관은 “발밑을 보면 아찔한 것 빼고는 쉽다. 가스관을 벽에 고정하는 장치가 약 1.5m 간격으로 설치돼 있어 이를 발판 삼아 아파트 4층까지 쉽게 올라갈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고층도 쉽게 침입할 수 있다. 발코니 창문 단속을 잘 하지 않는 고층 주민의 생활 습관을 이용하는 것. 이런 허점을 노리고 아파트 옥상에서 몸에 밧줄을 묶은 채 내려오는 수법도 이용된다.

관련 범죄가 잇따르지만 문단속 외에는 현실적으로 뚜렷한 예방법이 없다는 것이 문제다. 원천적으로 이 같은 범죄를 막기 위해 최근에는 아파트 외벽 대신 내부에 가스관을 설치하는 추세도 증가하고 있다.

주애진·김호경 기자 ja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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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관타기 꾼#성폭행#가스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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