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광진구 워커힐호텔에서 지난달 열린 한국대학교육협의회 정기총회에 200여 개 4년제 대학의 총장이 대거 참석했다. 지난해 정기총회 당시와 다른 얼굴이 많았다. 총장 선임 시즌이라서 40여 개 대학의 총장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총장은 대학의 상징적인 존재. 이들의 연배나 전공은 대학가의 트렌드를 반영하는 가늠자 역할을 했다. 2000년대에는 대학이 외형적 성장에 집중하면서 대부분 경영학 또는 경제학 전공 교수를 수장으로 내세웠다. 또 원로교수 반열에 드는 60대 이상의 교수를 총장으로 선임하는 일이 관례였다. 최근에는 달라졌다.
○ “국제경쟁 내몰려 빨리 움직이는 리더 선호”
이번 대교협 정기총회장에서는 유독 검은 머리의 총장이 많았다. 50대 중후반의 총장이 크게 늘어난 결과다. 60, 70대가 대부분이었던 2000년대와는 다른 분위기였다.
지난해 취임한 총장 중에도 50대가 많다. 황선혜 숙명여대 총장(59), 김영섭 부경대 총장(58), 최성을 인천대 총장(58), 신구 세종대 총장(56), 이기권 한국기술교육대 총장(56), 권진택 경남과기대 총장(54), 이정선 광주교대 총장(54)이 대표적이다.
세종대 관계자는 “예전에는 40대 후반이나 50대에 보직을 맡다가 60대에 총장이 되는 일이 많았다. 요즘은 40대 초반부터 보직을 맡아서 50대 초중반이면 이미 총장이 될 정도의 경력을 쌓은 교수가 적지 않다”고 전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총장이 부총장보다 연배가 낮은 대학도 속속 늘어나는 양상이다. 60대 중반에 총장이 됐던 전직 사립대 교수는 “국내 대학이 국제 경쟁에 내몰리면서 대학 구성원 사이에도 빨리빨리 움직이는 리더에 대한 욕구가 생기는 것 같다. 변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분위기가 총장의 연령대를 낮추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대학가에서는 젊은 총장이 점점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국내 대학에서도 교수들의 경력 관리가 이른바 ‘투트랙(Two Track)’으로 나뉘는 분위기가 생겨나고 있기 때문이다. 선진국 대학에서는 교수들이 연구나 교육에 전념하는 경로와 학교 경영에 주로 관여하는 길로 갈라져 일찌감치 특정인이 ‘총장 훈련’을 받는 사례가 많다.
○ 특성화 강조… 대학발전 방향에 맞춰
대학가에서는 2000년대 접어들면서 경영이나 경제를 전공한 총장이 급격히 늘었다. 인문사회과학을 전공한 교수들이 주로 총장을 맡던 이전과 다른 양상이었다.
당시 대학, 특히 사립대는 총장의 네트워크를 앞세워 외부로부터 발전기금을 모으는 데 적극 나섰다. 경영학계의 스타급 교수가 총장으로 등장하면 대기업의 장학금이나 건물을 기부받는 데 훨씬 유리하다는 생각에서였다.
2005년 전후에는 정운찬 서울대 총장과 정창영 연세대 총장이 경제학과, 어윤대 고려대 총장이 경영학과 출신이었다. 손병두 전 서강대 총장, 이상범 전 서울시립대 총장, 홍승용 전 인하대 총장 등도 대표적인 경제 경영통이었다.
대학이 질적 변화를 중시하면서 총장의 전공 역시 크게 달라지는 중이다. 최근 1년 사이에 취임한 총장 가운데 경제 또는 경영학 전공은 김기언 경기대 총장, 송희영 건국대 총장, 이용구 중앙대 총장, 지병문 전남대 총장, 홍승용 덕성여대 총장(전 인하대 총장) 정도다.
전공분야도 많이 다양해지고 있다. 황선혜 숙명여대 총장은 영문학을, 전혜정 서울여대 총장은 의류학을 전공했다.
특히 2000년대 이전과 비교할 때 이공계 출신 총장이 늘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신구 세종대 총장, 유기풍 서강대 총장, 노석균 영남대 총장은 화학도 출신이다. 한헌수 숭실대 총장은 전자공학, 최성을 인천대 총장은 물리학을 전공했다. 또 서교일 순천향대 총장과 서재홍 조선대 총장은 의대 출신이다.
지방대학에서는 교육학을 전공한 총장들이 늘었다. 박태학 신라대 총장, 안병환 중원대 총장이 교육학자다. 교육인적자원부 차관을 지낸 이종서 관동대 총장은 사범대 출신이다. 대교협 관계자는 “과거에는 교수 수가 많은 법대나 경영대에서 총장이 많이 배출됐고 특히 총장 직선제가 대세일 때는 이런 경향이 뚜렷했다”면서 “요즘은 특성화를 강조하면서 대학의 발전 방향에 맞는 다양한 전공의 총장이 나온 것 같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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