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오후 9시경 강원 원주시 남한강변의 한 별장 앞에 서자 간담이 서늘했다. 정부 고위 관료를 포함한 지도층 인사들이 건설업자 A 씨에게서 성접대를 받은 장소로 의심받는 별장 주변은 암흑천지였다. 희미한 가로등 불빛만이 대문 앞을 비췄다. 별장 안에선 개 짖는 소리만 울려 퍼졌다.
기자는 인근의 다른 집 문을 두드렸다. 별장에서 벌어진 일들에 대한 증언을 들어 보기 위해서였다. 집주인과 잠시 대화를 나누는 사이 별장 관리인이 나무 몽둥이를 들고 집 안으로 들이닥쳤다. 취재팀이 별장 앞에 세워 놓은 차를 폐쇄회로(CC)TV로 본 모양이었다. 관리인을 본 집주인은 “난 아무 말도 안 했다”고 하고는 집 안으로 사라졌다.
관리인은 A 씨를 ‘대장’이라고 불렀다. 그는 기자에게 “대장은 여기 없다”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인근 주민들은 “관리인이 기자들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입단속을 단단히 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 주민은 인기 여가수가 별장에 왔었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주민들은 “별장에 A 씨가 숨어 있다”고 했지만 관리인은 “여기 없다”는 말만 반복했다. 취재팀이 확보한 사진에 따르면 이 별장 내부에는 노래방 기기와 드럼 세트, 홈바 등이 설치돼 있다.
기자는 A 씨가 몸을 피한 곳으로 추정되는 충북 제천시의 한 절을 찾았다. 별장에서 한 시간 남짓 걸리는 거리였다. A 씨는 별장에 귀한 손님이 올 때면 이 절에서 만든 밑반찬을 얻어 원주 별장으로 갔다고 한다. 주지 스님은 “A 씨가 별장에 고위층을 불러서 자주 접대했다. 그들이 절간 음식을 좋아한다고 해서 이곳까지 와서 얻어 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2월 이후 이곳에 들르지 않았다”고 했다.
본보 취재 결과 A 씨는 최소 4, 5개의 건설 및 리모델링 관련 업체 회장으로 활동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A 씨 지인들은 “회장 명함은 허울일 뿐 2006년 분양 실패 이후 빚이 늘어 고민이 컸다”고 전했다. A 씨는 시행을 맡은 건물 분양 과정에서 투자비 70여억 원을 횡령한 혐의로 아내 등과 함께 투자자에게 고소당하기도 했다. 70억 원 횡령 건은 불기소 처분이 내려졌지만 지난달엔 분양자 8명에게 분양대금 30억 원을 횡령한 혐의로 다시 고소당했다. A 씨가 2008년 토지를 매입해 추진한 골프장 공사도 아직 첫 삽을 뜨지 못했다. 취재팀이 A 씨 자택과 회사 관련 주소지를 방문해 보니 A 씨와 투자 관계로 얽힌 사람들이 거주하거나 점유하고 있었다. 이들은 한결같이 “A 씨에게 빌려 준 돈을 받지 못했다”고 했다.
18일 A 씨가 주로 출근하는 서울 강남의 한 사무실에 찾아갔을 땐 책상 하나와 컴퓨터, 소파밖에 놓여 있지 않았다. 자신이 돈을 빌린 업체의 방 하나를 빌려 쓰는 탓에 문에 붙이는 안내판조차 없었다. 책상에는 각종 고소장, 등기부등본 등 소송에 필요한 서류뭉치만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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