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대 이을까… 21년 연하 영국 남편 맞은 ‘고리나’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3월 26일 03시 00분


■ 서울동물원, 고릴라 짝짓기

“쑥스럽구먼” 서울대공원 고릴라 방사장에서 합사 5일째를 맞은 고리나(왼쪽)와 우지지(오른쪽) 커플. 국내 고릴라의 대를 잇기 위해 영국에서 온 총각 신사 우지지는 바위 뒤에 숨어 연상의 여인인 고리나의 동태를 살피고 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쑥스럽구먼” 서울대공원 고릴라 방사장에서 합사 5일째를 맞은 고리나(왼쪽)와 우지지(오른쪽) 커플. 국내 고릴라의 대를 잇기 위해 영국에서 온 총각 신사 우지지는 바위 뒤에 숨어 연상의 여인인 고리나의 동태를 살피고 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경기 과천 서울대공원에 있는 40년생 롤런드고릴라 암컷 ‘고리나’는 국내 유일의 암컷 고릴라다. 2011년 2월 48년생이던 남편 ‘고리롱’이 노환으로 죽은 뒤 2년을 독수공방했다.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고릴라는 국내에 암수 통틀어 고리나뿐이어서 친구도 없었다.

그런 고리나의 집에 최근 21년이나 어린 롤런드고릴라 수컷이 들어왔다. 서울대공원 측이 짝짓기를 하라며 보내준 총각이다.

25일 서울대공원 내 고릴라 방사장. 고리나는 사철나무를 뽑아 들고 어린 수컷 ‘우지지’에게 슬쩍 다가갔다. 커다란 돌 뒤에 숨어 고리나의 동태를 살피던 우지지는 고리나가 다가오자 자리를 옮기려 했다. 자신을 피하는 우지지에게 화가 난 것일까. 고리나는 사철나무로 우지지를 때리기 시작했다. 우지지도 이에 질세라 주먹으로 고리나 등짝을 ‘퍽’ 하고 내리치며 맞섰다. 몸무게가 100kg인 고리나는 덩치가 두 배나 큰 우지지(180kg)에게 맞자 화들짝 놀란 표정으로 달아났다. 다시 멀찍이서 서로를 피하는 두 고릴라. 방사장엔 로맨스는커녕 어색한 분위기로 가득했다.

고리나와 우지지는 국내에서 고릴라의 대를 이어야 하는 ‘중요한 임무’를 갖고 있다. 멸종위기종인 롤런드고릴라는 전 세계에 300∼400마리밖에 없어 동물원에 들이는 것은 현재 거의 꿈꾸기 힘든 상황이다. 한 마리에 5억∼20억 원에 달하지만 실제로는 팔려고 하는 데가 없어 부르는 게 값이라고 할 정도다. 서울대공원의 1년 평균 동물 구입 예산은 3억 원 안팎이다.

그래서 서울대공원은 2000년부터 고리롱과 고리나가 새끼를 낳기를 고대했다. 짝짓기를 유도하려고 고릴라가 짝짓기를 하는 ‘야한 동영상’까지 보여줬지만 소용이 없었다. 생전 고리롱은 고리나에게 맞고 살았다. 10년이나 어린 아내에게 힘에서 눌려 제대로 짝짓기를 못한 것. 고리롱의 정자를 채취해 인공수정을 하려 했지만 무정자증인 것으로 밝혀졌다.

서울대공원 측은 고리롱 사망 전인 2009년부터 해외로 나가 직접 수컷 롤런드고릴라 구하기에 나섰다. 같은 해 10월에는 서울대공원장이 세계동물원수족관협회(WAZA) 총회에 참석해 국내에 수컷 고릴라 도입이 시급하다는 사실을 알렸다.

서울대공원의 간절한 바람은 2010년 6월 결실을 봤다. 유럽동물원수족관협회의 소개로 영국 포트림동물원이 동물원 내 고릴라 21마리 중 수컷 한 마리를 흔쾌히 영구 무상 임대 형식으로 보내주기로 한 것. 고릴라 종 보존을 위한 일인 만큼 돈을 받지도 않았다. 우지지는 지난해 12월 23일 영국 현지 사육사들과 함께 서울대공원에 왔다. 우지지는 아직 한 번도 2세를 보지 않은 총각인 데다 고리나보다 21년 아래여서 서울대공원 측은 한껏 기대에 부풀었다.

서울대공원은 3개월간 두 고릴라가 철창을 사이에 두고 서로의 얼굴과 냄새를 익히게 한 뒤 21일 방사장에 합사했다. 그러나 서울대공원 측의 기대와는 달리 고리나는 텃세를 부렸고 낯선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우지지는 고리나를 피하고 있는 상황.

노정래 서울동물원 원장은 “고릴라는 수시로 발정기가 찾아오기 때문에 싸우는 과정을 거친 뒤 친해지면 자연스럽게 짝짓기를 할 것”이라며 “검사 결과 고리나가 아직 임신이 가능한 것으로 나타난 만큼 이번에는 꼭 대를 이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서울대공원#고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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