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를 일으켜 죄송합니다. 엄격한 잣대의 책임감으로 기업을 경영하겠습니다.”(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45)
“국회의 출석요구에 응하는 게 국민의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부득이한 사유로 불응해 죄송합니다. 관대한 처분을 바라겠습니다.”(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41)
재벌가 3세인 유통업계 오너들이 고개를 숙였다. 26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 각각 형사8단독 소병석 판사와 형사9단독 성수제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첫 공판에서다. 정 부회장은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외손자이며 정 회장은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손자다.
검찰은 두 사람을 국정감사와 청문회에 불출석한 혐의(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 위반)로 각각 벌금 700만 원과 400만 원에 약식 기소했지만 법원은 “직접 심리할 필요가 있다”며 정식 재판에 회부했다. 변호인 측이 “억울하다”고 주장한 것도 정식 재판으로 이어진 이유 중 하나가 됐다. 대기업 오너가 국회 출석 거부 혐의로 재판을 받는 건 처음이다.
“국회에 나가 본인의 의견을 피력하는 게 좋다고 보지 않으셨나요?” 성 부장판사가 물었다. 정 회장은 “그러는 게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잘못해서 죄송합니다”라고 했다.
양측 변호인들은 혐의를 인정하면서도 “사유를 참작해 달라”고 호소했다. 정 부회장 측은 “해외출장이 면책 사유가 될 순 없지만 주주에 대한 책임도 중하게 고려해야 하는 입장”이라고 했다. 정 회장 측은 “대표이사가 대신 출석하게 했고, 관련 자료도 미리 제출했다”고 했다. 공판 후 두 사람은 비서진에게 둘러싸여 법원을 빠져나갔다.
정 회장은 다음 달 11일, 정 부회장은 18일에 선고가 내려진다. 같은 혐의로 함께 재판에 회부된 정 부회장의 동생 정유경 ㈜신세계 부사장의 첫 공판은 27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다음 달 13일에 열린다.
수도권 한 법원의 판사는 “재벌 오너에게 벌금 몇백만 원은 별 게 아닐 수 있지만 법정에 선 것 자체가 큰 부담이 됐을 것”이라며 “오늘 재판이 지도층 인사의 국회 불출석 관행을 근절하기 위한 선례가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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