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오전 11시 서울 여의도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이사회 회의장을 빠져나온 김재철 MBC 사장(60)은 취재진의 질문에 짧은 대답만 남기고 자리를 떴다. 김 사장은 이날 이사회에 출석해 “방문진의 위임을 받은 사장으로서 도리와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고 사과하며 약 1시간 동안 소명했지만 이사들은 해임안을 통과시켰다. 2010년 2월 취임 이래 이미 세 차례 해임안이 상정될 정도로 논란이 거셌던 김 사장의 거취 문제는 이렇게 마무리됐다.
○ 임기 남은 김 사장의 해임은 왜?
김 사장 해임안은 23일 방문진 여야 이사들이 상정한 뒤 불과 3일 만에 의결됐다. 앞선 세 차례의 해임안 상정 때와 달리 이날은 김 사장의 퇴진을 줄곧 요구해온 야당 추천 이사 3명 말고도 여권 추천 이사 2명이 해임 쪽에 손을 들어줬다. 이 때문에 김 사장의 전격 해임은 새 정부의 입김이 작용한 게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됐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이를 부인했지만 여권 일각에서는 청와대가 직접 나서진 않았더라도 암묵적으로 묵인한 것이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방송통신위원회 고위 관계자는 “김 사장이 방문진과의 사전협의 없이 계열사 임원 인사 내정자를 발표했다는 이유만으로 여당 이사들이 해임에 동의했을 리 없다”며 “박근혜 대통령의 MB 정권 낙하산 인사 정리 예고, 정부조직법 원안 통과 때 김 사장의 퇴진을 조건으로 내걸었던 야당과의 갈등, 사회 통합 분위기로 가려는 의지 등이 합쳐져 나타난 결과”라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이계철 방송통신위원장을 비롯해 최필립 정수장학회 이사장, 김 사장을 옹호하던 김재우 방문진 이사장도 모두 퇴진했다.
김 사장의 해임은 갑작스러워 보이지만 ‘곪을 대로 곪아 터질 때가 됐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김 사장을 둘러싼 온갖 논란과 의혹으로 바람 잘 날이 없었기 때문이다. 김 사장은 2010년 2월 취임하면서부터 이명박 정부의 ‘낙점 인사’라는 비판을 받았다. 취임 한 달 만에 김우룡 당시 방문진 이사장이 “김 사장이 큰집(청와대)에 불려가 조인트 까인다”고 밝히면서 논란에 불을 지폈다. 재임 동안 정권을 비판하는 프로그램의 방영이 연기되거나 제작이 중단됐고, 이 과정에서 노조와의 갈등이 커져 대규모 파업을 불렀다.
○ 새 MBC 사장에 관심 집중
김 사장의 후임으로는 구영회 MBC미술센터 사장, 권재홍 보도본부장, 정흥보 전 춘천MBC 사장, 최명길 보도제작국 부국장, 황희만 전 부사장 등이 거론된다. 역대 정부에서 반복돼온 방송 장악 논란을 피하기 위해 대선 캠프 관계자는 임명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방문진은 29일 이사회를 열어 신임 사장 공모를 포함한 후속 조치를 논의한다. 7∼10일 공모기간에 지원자들이 제출한 경영계획서 등 서류 심사를 거쳐 3배수 정도로 후보를 압축한다. 후보 면접 심사를 한 뒤 이사회 투표로 사장 내정자를 결정하면 MBC 주주총회에서 공식 확정한다. 신임 사장의 임기는 김 사장의 잔여 임기인 내년 2월까지다.
김 사장에 이어 신임 사장마저 박근혜 정부의 낙하산 인사라는 비판을 받을 경우 이명박 정부 때 겪었던 노사 갈등이 되풀이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MBC 노조는 이날 성명을 내고 “방송의 독립을 이룰 수 있는 차기 사장이 와야 한다”고 밝혔다.
김윤종·전주영 기자 zozo@donga.com
[바로잡습니다]27일자 A6면
◇27일자 A6면 ‘與측 이사 2명도 해임 찬성… 朴心 담겼나’ 기사에서 MBC 후임 사장 후보 중 최명길 씨는 보도제작국 부국장이 아니라 보도국 유럽지사장이기에 바로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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