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이 사내 경영전략회의에서 입을 열었다. “고객들이 식품에 대해선 진정성을 더욱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같은 업계의 다른 회사들보다 한 단계 높은 기준을 적용해야 합니다.”
정 회장의 의견에 따라 백화점 식품담당 임원과 바이어들은 고객들에게 진정성 있는 태도를 보여줄 방법에 대해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놨다. 그러던 중 한 바이어가 채널A의 인기 프로그램인 ‘이영돈 PD의 먹거리 X파일’에 나온 ‘인공조미료(MSG)편’ 이야기를 꺼냈다. 이들은 MSG의 유해성 여부와 무관하게 소비자들에게 ‘MSG 선택권’을 주자는 제작진의 의견에 공감했다.
이후 현대백화점은 2개월의 연구기간을 거쳐 이달 8일부터 서울 압구정본점 지하 식품매장에서 ‘노(NO) MSG’ 반찬 코너를 열었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제조 단계뿐 아니라 원료 선택 과정에서부터 철저하게 MSG를 배제한 진짜 ‘NO MSG 매장’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식품업계와 유통업계가 ‘MSG 선택권’을 달라는 소비자들의 요구에 대해 다양한 대응책을 내놓고 있다. ‘먹거리 X파일’이 이슈를 제기한 이후 MSG에 대한 관심이 사회적으로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노력에 소비자들도 긍정적인 평가를 내놓고 있다. 6세 자녀를 둔 맞벌이 주부 김정현 씨(33·여)는 “아이를 생각해 되도록 첨가물이 없는 음식을 찾고 있었는데 최근 들어 선택의 범위가 늘어 반갑다”고 말했다.
CJ제일제당은 기존에 출시됐던 조미료 ‘산들애’를 개선해 만든 ‘100% 원물 산들애’를 내놓았다. 100% 천연 재료를 빻아서 넣은 천연 조미료 제품이다. CJ제일제당 관계자는 “합성 첨가물이 전혀 들어가지 않은 제품”이라며 “건강에 관심이 많은 소비자를 중심으로 최근 큰 인기를 끌고 있다”라고 전했다.
신세계백화점은 지난해 7월 문을 연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SSG 푸드마켓’에 미역 북어 새우 등 다양한 원료를 사용한 천연 조미료 판매 공간을 마련했다. 처음에는 SSG 청담점에서만 팔다가 고객의 반응이 뜨거워 수도권 전체 백화점으로 확대했다. 올해 들어 매출이 당초 예상보다 50% 가까이 늘었다. 신세계 우동숙 식품 바이어는 “최근 안심 먹거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고객들이 천연 조미료를 많이 찾고 있다”며 “간편한 티백 형태의 제품은 품절 사태를 빚기도 했다”고 말했다.
올해 들어 이달 27일까지 이마트에서 판매하는 천연 조미료 제품의 평균 매출 신장률은 37%였다. 지난해 연간 평균 매출신장률(29.3%)보다 7.7%포인트 높아졌다. 이석호 이마트 조미료 바이어는 “가족 건강에 관심이 많은 고객이 늘면서 웰빙 조미료 상품도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고 소개했다. MSG를 줄이기 위한 노력은 쉽지 않았다. 현대백화점은 MSG가 들어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1000여 개에 이르는 식재료를 일일이 체크했다. 한 입점 업체는 천연 재료로 만든 된장이 제맛이 안 나자 9가지 종류의 된장을 섞은 ‘블렌드 된장’을 자체 개발하기도 했다.
허혜연 녹색소비자연대 부장은 “화학적으로 생성된 MSG도 식품이기 때문에 개인에 따라 민감한 정도가 다르다”며 “소비자들에게 알 권리를 제공하고 선택의 폭을 넓혀 주는 것은 긍정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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