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신광영]오원춘 사건 1년… 피해여성에게 보내는 편지

  • Array
  • 입력 2013년 4월 1일 03시 00분


코멘트

당신의 희생 헛되지 않게… 112 개선 두 눈 부릅뜨겠습니다

신광영 사회부 기자
신광영 사회부 기자
112 접수요원과의 대화가 생전 마지막 통화가 될 줄 당신은 몰랐을 겁니다. 오원춘의 집에 납치된 당신은 그가 화장실에 간 사이 방문을 걸어 잠그고 112에 전화를 걸었죠. 방문이 서서히 뜯기는 그 절체절명의 순간에 가족이 아닌 112에 전화를 건 것은 살 수 있다는 희망 때문이었을 겁니다. 끝내 경찰은 오지 않았고 그 112 전화는 생의 마지막 순간 가족의 목소리와 맞바꾼 통화가 됐습니다.

1년 전인 지난해 4월 1일은 일요일이었습니다. 그날 오후 10시 반경 당신은 휴대전화 조립공장에서 야근을 하고 집에 가던 길이었죠. 일을 하며 짬짬이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던 스물여덟의 꿈 많은 딸이었다고 들었습니다. 월급을 절약해 부모 생활비를 대던 당신은 그날 밤도 택시 대신 버스로 퇴근하다 변을 당했습니다.

문을 뜯고 들어온 오원춘과 마주해야 했던 그 공포의 시간 동안 경찰은 엉뚱한 곳을 헤맸습니다. ‘나 여기에 있다’고 당신이 필사적으로 알리려 했던 단서들을 경찰은 묻지 않았고, 듣고도 흘려버렸습니다. 13시간이 지나 당신을 발견하고서도 경찰은 “어쩔 수 없었다”며 거짓 해명을 했습니다. 당신의 마지막은 그래서 더 참담했습니다.

당신이 희생된 이후 경찰은 112 인력을 늘리고 부적격자를 솎아낸다며 전국의 신고접수 요원 2154명 가운데 235명을 교체했습니다. 112 상황실 근무를 3조 2교대에서 4조 2교대로 바꾸고 인사혜택을 줘 유능한 인재를 끌어모으고 있습니다. 신고가 들어오면 무엇을 어떻게 물어봐야 되는지 매뉴얼을 만들어 교육도 시킵니다. 진작부터 했어야 할 너무 당연한 조치들입니다. 그동안엔 교육도 안 되고 의욕도 없는 경찰관에게 시민들이 목숨을 맡겨온 셈이니 한심하기도 합니다.

당신의 죽음은 공권력의 무사안일을 통렬히 일깨운 희생이었습니다. 한 경찰 고위 간부는 “오원춘 사건이 없었다면 112 개선 작업이 이렇게 일사천리로 진행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합니다. 저와 동료들은 얼마 전 ‘경찰, 수원 20대 여성 피살사건 축소 은폐’ 보도로 한국기자상을 받았습니다. 당신과 유족의 처절한 불행이 저희에겐 상(賞)으로 돌아온 이 아이러니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하늘에 닿지 못할 이 편지가 당신에게 어떤 위안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경찰이 112를 바꿔놓겠다는 약속을 제대로 실천하는지 감시하려 합니다. 그게 당신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는 우리의 의무인 것 같습니다.

신광영 사회부 기자 neo@donga.com
#오원춘#기자의 눈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