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액에서 금빛천연도료인 황칠 추출… 항균-항산화 효과 새롭게 확인
당뇨-고혈압 민간요법으로도 쓰여
1일 오후 제주 서귀포시 남원읍 하천인 신례천 주변. 종가시나무 동백나무 사이로 회색빛 줄기의 늘푸른나무가 하늘 높이 솟아 있다. 키는 20m나 되지만 줄기는 어른 팔뚝 굵기 정도밖에 안된다. 신비의 금빛 천연도료로 알려진 황칠(黃漆)이 나오는 ‘황칠나무’다. 국내에서 황칠나무 자생지는 제주도를 비롯해 전남 보길도 등 남해안 일부 지역에 불과하다. 그중에서도 제주지역은 국내 자생 황칠나무의 70%가 자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황칠은 고대 공예품의 표면을 장식하거나 왕의 갑옷, 집기 등에 쓰였다. 오래 유지되는 황금빛 때문에 ‘옻칠 1000년, 황칠 1만 년’이라는 말이 전해진다. 조선시대 조정 공납과 중국의 조공 요구가 많아 마구잡이 벌목으로 대부분 사라졌다. 전통 황칠공예도 자취를 감췄다가 최근 명맥을 잇는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황칠은 나무에 상처를 낸 뒤 흘러내리는 액체를 정제해 만든다. 10년생 이상된 나무 한 그루에서 불과 3mL가량만 나올 정도로 귀하다.
○ ‘옻칠 1000년, 황칠 1만 년’
황칠나무를 산업화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황칠나무를 주제로 20여 편의 논문이 나올 정도로 연구도 진척됐다. 황칠성분 가운데 방부제 역할에 주목하다 항균 항산화에 효험이 있다는 사실이 새롭게 확인됐다. 간세포를 재생하는 능력을 비롯해 당뇨 고혈압에도 효험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민간요법으로 이용되고 있다.
제주대 생명과학기술센터는 민간기업인 제주파나텍㈜(대표 김재언)과 손잡고 황칠나무를 이용한 시제품을 출시했다. 황칠나무 추출물에 동결건조 기법을 접목시켜 액상, 환(丸), 분말 상품을 만들었다. 별다른 첨가물을 넣지 않고 황칠나무 추출물이 99% 이상 들어간다. 이들 제품을 만들기 위해 황칠나무를 옹기에 넣어 숙성시킨 뒤 발효액을 얻어내는 기술을 개발해 특허를 획득했다. 김 대표는 “민간에서 황칠나무를 이용할 때 불순물이 섞일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며 “현재는 건강기능식품으로 개발했지만 추가 연구를 거치면 의약품 원료로 쓰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 새로운 산업자원으로 주목
제주 황칠나무 자생지는 한라산 남쪽 지역에 집중돼 있다. 따뜻한 기후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황칠나무는 연중 최저기온 영하 2도 이상, 평균 14∼16도에서 잘 자란다. 바람에 쉽게 뽑히기 때문에 군락을 이루지 않고 후박나무 구실잣밤나무 등 상록활엽수 사이에 띄엄띄엄 자생하며 바람을 피하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제주도는 황칠나무를 대표적인 향토자원으로 키우기 위해 농림축산식품부에 향토산업육성사업으로 지정해주도록 신청했다. 심사를 거쳐 지정되면 30억 원의 사업비가 투자된다. 산학 공동사업으로 추진해 인공조림, 제조, 관광 등을 융합한 지역 대표상품으로 육성한다. 식물연구가 김철수 씨(전 제주도 한라산연구소장)는 “제주는 황칠나무 대량생산에 최적의 기후조건 등을 갖추고 있다”며 “효과가 입증되면 알레르기를 유발하는 삼나무, 사양길에 접어든 귤나무 등을 대체할 수 있는 산업화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일본 중국 등에서 자라는 황칠나무는 황금빛 황칠이 나오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토양 해풍 기후 등의 영향으로 추정하고 있을 뿐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잎은 하나의 나무에 오리발 형태를 비롯해 타원형 원형 등으로 다양한 모습을 갖고 있다. 전문가들은 황칠나무에 대한 세부연구나 조사가 이뤄지면 더욱 다양하게 개발 가능한 ‘미개척 식물자원’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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