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전남]나주 천연염색공방, 장애인-이주여성 꿈이 물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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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4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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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전남 나주시 다시면 천연염색공방에 둥지를 튼 ‘꽃물담쟁이’. 2일 지적장애인들이 공방에서 염색 스카프를 다림질하고 있다. 나주천연염색문화재단 제공
지난달 전남 나주시 다시면 천연염색공방에 둥지를 튼 ‘꽃물담쟁이’. 2일 지적장애인들이 공방에서 염색 스카프를 다림질하고 있다. 나주천연염색문화재단 제공
#1 2일 오전 전남 나주시 다시면 회진리 천연염색공방. 영산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에 자리한 공방에서 지적장애인들이 쪽빛 스카프와 손수건을 다리고 있었다. 8평 남짓한 공방에는 형형색색의 염색천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꽃물담쟁이’란 간판을 내건 이 공방은 전남 나주시 삼영동 사회복지법인 ‘계산원’ 가족들이 꿈과 희망을 키워 가는 곳이다. 계산원은 3년 전부터 자체적으로 천연염색 프로그램을 운영해 왔다. 물과 천을 다루는 천연염색이 장애인들의 재활치료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지역특화산업인 천연염색 제품을 만들어 판매하면 자립 의지도 북돋울 수 있다는 기대도 있었다. 홍이순 사회복지사(51·여)와 김수옥 물리치료사(52·여)가 선생님으로 나섰다. 천연염색 지도사 자격증을 딴 두 사람은 장애인에게 염료가 천에 잘 스며들도록 하는 매염제(媒染劑) 사용법, 천에 붙어 있는 불순물을 제거하는 정련 과정 등을 가르쳤다. 장애인들이 곧잘 따라 하자 두 사람은 새로운 도전에 나서기로 했다. 지난달 2일 장애인 식구들과 함께 천연염색공방에 둥지를 틀고 본격적으로 제품 생산에 나섰다. 지난해 9월 문을 연 공방에는 이미 10개 업체가 입주해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꽃물담쟁이’는 입주한 지 10일 만에 첫 납품의 기쁨을 누렸다. 무안국제공항 면세점에 120만 원 상당의 스카프와 손수건을 판매한 것. 홍이순 복지사는 “옷감에 예쁜 색을 물들이고 말리는 작업이 장애인들의 정서 안정에 도움이 되는 것 같다”며 “무엇보다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 준 게 가장 큰 수확”이라고 말했다.

고가이 에밀리야 씨(왼쪽)와 고다이 아야 씨(왼쪽에서 두 번째)가 2일 ‘에틱’ 공방에서 손님에게 염색한 옷을 보여주고 있다. 나주천연염색문화재단 제공
고가이 에밀리야 씨(왼쪽)와 고다이 아야 씨(왼쪽에서 두 번째)가 2일 ‘에틱’ 공방에서 손님에게 염색한 옷을 보여주고 있다. 나주천연염색문화재단 제공
#2 ‘꽃물담쟁이’ 옆에는 다문화 공방 ‘에틱’이 있다. 지난달 12일 입주한 이 공방은 우즈베키스탄 출신 고가이 에밀리야 씨(32)와 일본에서 건너온 고다이 아야 씨(47)가 꾸려 간다. 에밀리야 씨는 2003년 결혼해 나주에 정착했다. 우즈베키스탄에서 고교 졸업 후 1년간 디자이너를 꿈꾸며 전문학원에 다녔던 에밀리야 씨는 한국으로 오면서 꿈을 접어야 했다. 하지만 3년 전 천연염색을 접하면서 그 꿈을 다시 펼치게 됐다. 그는 동신대 천연염색육성사업단에서 이주 여성들과 함께 천연염색 이론을 배우고 의류, 가방, 소품 등을 만들었다. 나주는 전남에서 다문화 가정이 가장 많은 곳이다. 사업단은 이주 여성들의 자립을 돕기 위해 염색 기술을 가르치고 있다. 에밀리야 씨와 고다이 씨는 전통 염료인 쪽을 저장해 발효시킨 뒤 석회나 잿물을 섞어 가라앉은 색소를 염료로 추출해 염색하는 우리 고유의 염색법에 매료됐다. 친자매처럼 지내는 두 사람에게 주위에서 창업을 권유했다. 동신대 천연염색육성사업단장인 최미성 교수(의상디자인학과)가 이들의 공방 입주를 주선했고 간판 이름도 지어줬다.

최 교수는 “다문화 공방 1호점이 탄생한 만큼 머지않아 2, 3호점도 문을 열 것”이라며 “두 사람의 솜씨가 좋아 공방 운영은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다”고 웃었다. 3남을 둔 에밀리야 씨는 “좋은 기회인 만큼 열심히 일해 돈을 많이 벌고 싶다”며 “외국인 관광객에게 천연 염색을 설명하는 해설사 역할도 할 것”이라고 말했다.

○ 나주는 천연 염색의 메카

나주는 예로부터 영산강변을 중심으로 쪽을 이용한 천연염색이 발달했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무형문화재(천연염색장) 2명을 배출한 천연염색의 본고장이다. 쪽 염색은 석회, 잿물로 발효시키는 과정이 복잡한 데다 1960년대 이후 화학 염료가 퍼지면서 점차 사라져 갔다. 하지만 참살이 열풍으로 쪽이 친환경 염료로 각광받자 나주시는 천연 염료 산업화에 나섰다. 염료뿐 아니라 식품, 의약품 등으로 쓰임새가 다양한 데다 5000억 원대에 이르는 국내 시장을 겨냥해 ‘색(色)의 도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천연염색공방 옆에는 2006년 세워진 천연염색문화관이 내부 리모델링을 통해 박물관으로 변신했다. 천연염색의 모든 것을 한눈에 보고 체험할 수 있는 박물관에는 한 해 7만여 명이 찾는다. 인근에 건립되는 천연염색산업센터는 나주를 대표할 천연염색 산업 클러스터의 핵심 시설이다. 내년부터 가동되는 센터는 쪽, 홍화, 꼭두서니 등 천연 재료에서 염료를 대량으로 뽑아 내고 쪽의 의학적 효능을 바탕으로 환경성 질환 치료제와 천연 항생제 사료, 화장품 등을 개발한다. 공방과 센터에 쪽을 공급하는 염료단지(5.5ha)는 이미 조성됐고 울금, 지초, 홍화, 대청 등 염료 식물을 전시하는 쪽 공원도 올 11월 개장한다.

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나주#천연 염색#꽃물담쟁이#에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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