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넘게 결혼생활을 하다 이혼한 80대 노부부가 24년 전 남편의 불륜을 두고 위자료 소송을 벌였다.
A 씨(84·여)는 1955년 B 씨(88)와 결혼했다. 장교로 일하던 B 씨는 1960년대 초 공군 대령으로 예편한 뒤 7년간 민간 항공사에서 임원으로 근무했다. B 씨는 한때 대기업인 D사 사장을 지내기도 했다. 회사를 나온 B 씨는 사업에 뛰어들었다가 1990년대 사기 혐의를 받게 됐다. 사업을 빌미로 수억 원을 가로챈 혐의로 징역 4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가 겨우 피해자와 합의해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형을 사는 동안 부인은 말없이 자녀들을 키웠다.
B 씨는 그런 부인과 이혼하려고 2008년 집을 나갔다. 그러고는 2011년 9월 이혼 소송을 제기했다. 여든이 넘은 나이에 혼인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부인은 소송 시작 한 달 만에 조정을 통해 B 씨와 이혼했다.
하지만 한 달도 안 돼 A 씨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됐다. 서류를 정리하다 B 씨가 1989년부터 29년이나 어린 다른 여자를 만나고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 서류에서는 B 씨가 내연녀 C 씨(59)에게 음식점을 차려 주기 위해 작성한 공사계약서를 비롯해, B 씨의 회사에서 수입한 원단을 C 씨가 판매할 수 있게 해 준 서류가 나왔다. 또 B 씨가 경제활동 능력이 없어졌을 시기인 2007년 경 C 씨가 B 씨에게 수차례 돈을 건넨 기록도 발견됐다.
20년 넘게 계속돼 온 전 남편의 불륜을 알게 된 A 씨는 이혼 두 달 만인 2011년 12월 B 씨와 내연녀 C 씨를 상대로 위자료 1억 원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그러나 남편과 내연녀는 “위자료 청구는 부정한 행위를 안 날로부터 3년 이내 혹은 부정한 행위가 있었던 날로부터 10년 이내에 해야 한다”며 “이미 A 씨가 위자료 청구 소송을 내기 수년 전부터 불륜 사실을 알고 있었으므로 위자료를 청구할 수 있는 소멸 시효가 지나 위자료를 줄 수 없다”고 맞섰다. A 씨가 남편의 불륜을 알고도 3년 이상 문제 삼지 않았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러나 법원은 이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서울가정법원은 “소멸 시효는 불륜 등 부정행위가 오래전에 끝났다는 걸 전제로 주장할 수 있는데, B 씨는 집을 나간 뒤 C 씨의 도움을 받아 생활하며 최근까지 부적절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인정돼 소멸 시효 주장은 의미가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남편의 부정행위로 인해 혼인관계가 파탄 났으므로 두 사람은 원고에게 위자료 5000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법원 관계자는 “흔치 않은 고령 부부의 이혼 소송에서 남편이 위자료 소멸 시효를 주장했지만 인정되지 않은 사례”라며 “민법상 ‘부정행위’는 배우자로서의 정조의무에 충실하지 못한 행위를 뜻하는 포괄적인 개념으로 부정행위가 이어지고 있을 때는 소멸 시효가 성립할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한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부정행위’가 포괄적인 개념이라는 것은 설령 남녀 간의 신체적인 관계가 없었더라도 부적절한 관계가 이어지고 있다면 이 역시 부정행위에 포함된다는 의미”라고 덧붙였다. 위자료 등 손해배상 청구 소멸 시효와 별도로 이혼청구권은 배우자의 외도 사실을 안 날로부터 6개월이 지나거나 부정행위가 있은 날로부터 2년이 지나면 시효가 소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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