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세청 ‘지하경제 양성화’ 착수
지방청 조사 인력 400여명 충원… 年매출 100억 이하 中企는 제외
부품 제조회사를 운영하는 A 씨는 자녀에게 재산을 증여하기 위해 자녀 명의로 10년 만기 저축성보험에 가입한 뒤 보험료 210억 원을 대신 내줬다. 장기저축성보험은 ‘비과세 상품’이어서 소득에 대한 정보가 노출되지 않는 점을 악용한 것. A 씨는 또 180억 원을 자녀에게 건네 자녀 명의로 땅과 빌딩을 사도록 했다. 국세청 감시망을 피하기 위해 현금만 이용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이런 방법으로 A 씨는 191억 원의 증여세를 피해 갔다.
A 씨의 탈세 행각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A 씨는 자기 회사가 쓰던 비싼 기계를 자녀 소유 계열사에 공짜로 빌려주고 당초 A 씨의 기업(모기업)에서 만들던 제품을 계열사에서 대신 생산하게 했다. 일종의 ‘일감 몰아주기’다. 또 자녀 소유 회사에서 받아야 할 임대료를 받지 않아 모기업의 소득을 줄이는 방법 등으로 법인세 351억 원을 탈루했다.
국세청은 이렇게 다양한 방법으로 세금을 떼어먹은 대(大)재산가와 불법 사채업자 등에 대해 전면적인 세무조사에 착수한다고 4일 밝혔다. 편법으로 부를 축적한 대재산가 51명, 역외탈세 혐의자 48명, 대부업자 117명, 인터넷 카페 관련자 8명 등 총 224명이 대상이다.
이번 조사는 김덕중 국세청장 취임 후 첫 대규모 세무조사로 국세청이 박근혜 대통령의 ‘지하경제 양성화’ 공약을 본격적으로 실행하겠다는 뜻이다. 임환수 국세청 조사국장은 “국민 누구나 탈세 혐의가 크다고 공감하는 대재산가, 고소득 자영업자, 민생 침해, 역외탈세 등 4개 분야에서 강도 높은 세무조사를 실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연 매출 500억 원 이상 대형 법인의 조사 비율을 높여 철저히 검증한다는 게 국세청의 방침이다. 올해 7월부터 시행되는 ‘일감 몰아주기 과세’(내부거래가 전체 매출의 30% 이상이며 총수 일가 및 특수 관계인 지분이 3%가 넘는 계열사에 증여세 부과)를 앞두고 지분을 차명(借名)으로 관리하거나, 위장 계열사를 설립해 매출을 분산하는 행위 등을 집중 점검한다. 역외탈세 혐의자에 대해서는 해외 정부로부터 자료를 제공받아 해외 발생 소득이나 금융계좌를 누락했는지를 정밀 분석하고 있다. 최근 3년간 한국인이 해외에서 소득을 얻고 세금을 낸 자료 10만여 건이 대상이다.
이를 위해 국세청은 지방청 조사 분야에 400여 명을 충원하고 서울지방국세청 조사2국과 4국을 ‘지하경제 추적조사 전담조직’으로 운영한다. 대신 전체 법인의 약 93%를 차지하는 연매출 100억 원 이하 중소 법인은 어려운 경기 상황 등을 감안해 정기 조사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인터넷 카페와 온라인 쇼핑몰에 대한 세무조사도 이뤄진다. 국세청에 따르면 일부 인터넷 카페 운영자들은 사업자등록을 하지 않은 채 건당 100만 원 정도를 받고 특정 기업 제품에 대한 사용 후기를 올리면서도 소득신고를 하지 않고 있다. 또 최근 급증하고 있는 온라인 구매대행업체 중 일부는 ‘해외에서 물건을 사온다’는 이유 등을 들어 현금 결제만을 강요하며 부가가치세 등 세금을 탈루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민 경제에 악영향을 끼치는 불법 사채업자도 주요 조사 대상이다. 미등록 대부업자인 B 씨는 아파트 재건축공사를 하는 건설업체에 연 100% 고리(高利)로 40억 원을 빌려줬다가 건설사가 이자를 내지 않자 용역업체를 고용해 분양사무실을 점거하는 등 영업을 방해해 건설사를 부도에 이르게 했다. 이후 받은 이자 40억 원은 소득세를 내지 않으려고 자기 자녀 명의의 아파트로 대신 받았다.
국세청 관계자는 “사채는 서민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주는 것 외에도 주가 조작, 불법 도박 등 또 다른 지하경제의 자금으로 활용된다”며 “금융거래 추적조사 등을 통해 관련인과 실제 전주(錢主)까지 파헤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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