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남자들한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고위층 성접대로 말썽을 일으키질 않나, 국회의원이 회의하면서 여성 나체 사진을 보질 않나, 국제앰네스티 인권위원을 지낸 이가 카카오톡으로 딸뻘의 젊은 여성에게 성희롱을 하질 않나. 그런데 거기 아무 상관도 없는 제3의 남자(나는 고은태, 고종석 두 사람이 성이 같은 남자라는 사실밖에 이유를 찾을 수가 없어 대한민국 시계가 잠시 씨족사회로 뒷걸음질 쳤나 의아했다)가 피해 여성에게 2차 피해를 가하질 않나. 그뿐이 아니다. 가수 조영남은 거기에 기름을 붓는다.
조영남은 최근 한 TV 연예프로그램에서 인터뷰를 하던 중 짧은 치마를 입은 젊은 여성 리포터 무릎에 자꾸 손을 얹으려고 시도하면서 몇 번이나 그녀에게 닦달하듯 “사귈래?” “우리 사귀자”라는 명백한 성희롱을 했다. 우연히 아침에 내 두 눈으로 직접 본 사실이다. 그러더니 조영남의 여자친구가 29명이 넘는다는 기사가 나왔다.
아무 상관없는 도덕적 엄숙주의 논란
당시 TV를 보며 내 눈을 믿을 수 없었다. 신문기자 시절 그를 인터뷰한 경험이 있어서 그가 전형적인 ‘껄떡남’이라는 사실은 익히 알았다. 그런데 TV 인터뷰 도중에도 여전히 ‘껄떡대는’ 모습을 보니 하도 기가 막혀 “나이가 70은 넘었을 테니 ‘노망’ 든 것”이라고 결론짓고 잊어버렸다. 한 사람의 시청자로서 나는 매우 불쾌했는데 당한 여성은 어땠을지 모르겠다. 당사자가 불쾌하지 않았다면 성희롱이 성립되지 않기 때문에 문제 삼기 힘든 것이 바로 성희롱 문제다.
사정이 이러니 여성 처지에서 보자면 정말 총체적 난국이다. 여성 대통령이 이끄는 나라에서 이 지경이니 거국적인 특단의 조치라도 내려야 할 것 같다. 하긴 여성 대통령선거(대선) 후보한테 생식기 운운하는 교수도 있었으니 오죽하겠는가. 그 후보가 대통령이 됐으니 그 말을 했던 교수의 요즘 꿈자리가 어떨지 궁금하다.
그럼 문제의 남자들을 하나하나 짚어보자. 먼저 인권운동가라는 고은태 교수. 그는 상대여성이 그가 한 말들을 폭로하자 “도덕적으로 옳지 못한 카카오톡 대화가 있었다. 변명하자면, 나는 당시 상대방도 그런 대화에 동의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는 사과 글을 바로 트위터에 올렸다.
그가 그녀에게 했다는 성희롱적 발언을 시시콜콜 따지지 않겠다. 그런 것들은 대등한 관계의 남녀 성인이 서로 합의했다면 어쩔 수 없는 분야에 속하기 때문이다. 나는 나와 관계없는 타인의 성적 취향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문제는 “상대방도 그런 대화에 동의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는 그의 변명에 있다. 그는 무엇을 근거로 그렇게 생각했을까. 더구나 피해 여성은 아버지뻘의 50대 남성인 그를 인권운동가로 존경했다고 한다. 남녀 간 서로 생각이 달라도 너무 다른 것이다. 여자의 ‘No’는 ‘Yes’라는, 남성의 뿌리 깊은 성차별적 착각이 성희롱과 강간, 성폭력을 부른다.
또 하나. 그는 엄연히 유부남이다. 그러나 한국 남자들은 자기가 유부남이라는 사실을 늘 잊고 사는 것 같다. 성희롱을 일삼으며 성적 자유를 맘껏 누리는 유부남들, 자기 아내한테는 어떻게 하는지, 아내에게도 자기와 똑같은 성적 자유를 허용하는지 여론조사라도 해보고 싶은 심정이다. 물론 다 그런 건 아니지만, 대한민국 유부남들은 여성문제에 관한 한 정말 문제가 많다. 제발 여자에 껄떡대지 마라
또 이런 경우에 꼭 나오는 논란이 ‘도덕적 엄숙주의’다. 진보 남성에 대한 비판이라도 할라치면 어김없이 나오는 얘기인데, 왜 진보 남성들에게만 도덕적 엄숙주의를 강요하느냐는 볼멘소리다. 그러나 성희롱 문제와 도덕적 엄숙주의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문제는 그 사건이 성희롱이냐 아니냐에 있지, ‘엄숙주의’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녀가 자유롭게 성을 구가하는 여성이라도 그녀의 의사에 반해 성희롱이나 성폭력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진보 남성들에게만 가혹한 잣대를 들이댄다고 불평하는 남성들, 정말 무엇이 진보인지 다시 공부해야 한다. 여성은 가장 대표적인 약자다. 여성문제에 대한 일말의 고민도 없이 인권이 어쩌고저쩌고 떠드는 것은 말짱 개소리다. 여성문제가 인권문제고, 인권문제가 여성문제인 것이다. 그러니 성도덕에서는 보수적 남성들이 차라리 더 낫다는 얘기도 나온다.
두 번째 남자 고종석으로 가보자. 나는 그가 한겨레 기자 시절 썼던 글을 애독하던 한 사람이다. 그는 고은태 교수의 성희롱 논란을 보면서 피해자의 과거 기록을 뒤져 리트위트해 또 다른 파문을 일으켰다. 이번 논란과 상관없는 과거 글들로 피해 여성의 평소 처신을 문제 삼는 데 대해 누리꾼의 비난이 잇따르자 그는 “사건 피해자가 강인하고 리버럴하며 독립적 여성이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 리트위트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건 또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강인하고 리버럴하며 독립적인 여성’은 성희롱을 당해도 괜찮다는 얘기인가. 그의 말에서 진보 남성들이 꿈꾸는 이상형의 여자 모습이 그려진다. 고종석의 논리대로라면 △리버럴(그는 이 말을 개방적이라는 의미로 사용한 것 같다)한 여성은 누구에게나 성희롱을 허용하고 △성희롱을 개의치 않을 정도로 ‘강인하며’ △성희롱을 당해도 아무에게도 도움을 청하거나 상의하지 않는 ‘독립적인’ 여성인 것 같다.
나는 직업으로 글을 쓰는 고종석에게 진정으로 충고를 하나 하고 싶다. 단어 뜻 제대로 알고 쓰라고. △‘리버럴’한 여성은 남자에 구애받지 않고 자기 인생을 자유롭게 선택하는 여성이고 △‘강인한’ 여성은 남자들에게 언감생심 성희롱할 생각은 꿈도 못 꾸게 만드는 강한 여성을 의미하며 △‘독립적인’ 여성은 경제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남자에게 의존하지 않는 독립적인 여성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마지막으로 우리나라 대표 ‘껄떡남’ 조영남. 그는 만나는 모든 여성을 나이나 결혼 여부와 상관없이 로맨스 상대로 보는 것 같다. 그런 걸 페미니스트는 ‘여성의 성적 대상화’라고 표현한다. 그가 얼마나 절륜한 정력을 자랑하는지는 내 알 바 아니지만, 바라건대 제발 여자한테 그만 좀 껄떡대면 좋겠다. 노추를 넘어 밥맛이다. 대한민국 남자들, 정말 이대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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