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전남]“문화자원에 스토리텔링 입혀라”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4월 9일 03시 00분


고려 태조 왕건과 장화왕후의 로맨스가 숨쉬는 전남 나주시 송월동 완사천. 나주시 제공
고려 태조 왕건과 장화왕후의 로맨스가 숨쉬는 전남 나주시 송월동 완사천. 나주시 제공
‘이 샘물은 힘차고 기백이 넘치는 멋진 남자 왕건과 어여쁘고 지혜로운 여자 오씨가 만나 사랑과 꿈을 이룬 곳입니다…. 이 신비의 샘물을 마시면 당신의 사랑과 꿈이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전남 나주시 송월동 ‘완사천(浣紗泉)’이란 샘 앞에는 이런 안내판이 있다. 완사천은 고려 태조 왕건이 나주에서 활동할 때 장화왕후를 만나 사랑을 나눈 전설이 깃든 자리다. 4년 전 안내판이 설치된 뒤 완사천을 찾는 관광객이 크게 늘어났다. 특히 젊은 남녀가 샘물 한 바가지를 나눠 마시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스토리텔링’이 지역의 새로운 문화콘텐츠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역사적 현장이나 전설, 인물, 지역 특산품 등에 얽힌 이야기를 재미있게 꾸며 문화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 자치단체가 늘고 있다.

○ 대박 난 ‘홍동백서’

전남 나주시와 경북 영주시가 지역 특산품인 배와 사과를 한 상자에 6개씩 담아 상품화한 ‘홍동백서’. 나주시 제공
전남 나주시와 경북 영주시가 지역 특산품인 배와 사과를 한 상자에 6개씩 담아 상품화한 ‘홍동백서’. 나주시 제공
나주시는 올 1월 설을 앞두고 경북 영주시와 함께 내놓은 과일세트가 전량 매진되는 대박을 터뜨렸다. 과일세트는 나주시와 영주시가 지역 특산품인 배와 사과를 한 상자(7.5kg)에 6개씩 담아 상품화한 ‘홍동백서(紅東白西)’. 이 브랜드는 스토리텔링을 통해 탄생했다. 사과와 배의 최대 산지인 두 자치단체는 지난해 수확 시기가 비슷한 두 과일을 한 상자에 담아 판매해 보자고 의기투합했다. 이 아이디어는 대통령직속 지역발전위원회가 공모한 ‘영호남 기쁨 창조사업’에 선정됐고 올해부터 2년간 10억 원을 지원받아 마케팅 사업을 벌이게 됐다. ‘홍동백서’는 차례상에 붉은 과실인 사과는 동쪽, 흰 과실인 배는 서쪽에 진설하는 점에 착안해 만든 것. 동쪽의 붉은 과실 영주사과와 서쪽의 흰 과실 나주배를 한 상자에 담아 포장함으로써 영호남은 물론이고 국민 모두가 화합하자는 의미를 담았다.

상품 개발과 출시를 유통업체가 아닌 자치단체들이 했다는 점에서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마트를 통해 출시한 지 일주일 만에 1만 세트가 팔렸고 4300세트를 추가로 납품해 10억7200만 원의 매출을 올렸다.

○ 뽕할머니 만나보세요

‘신비의 바닷길’로 유명한 전남 진도군 고군면 회동리 앞에 세워진 뽕할머니상. 진도문화원 제공
‘신비의 바닷길’로 유명한 전남 진도군 고군면 회동리 앞에 세워진 뽕할머니상. 진도문화원 제공
해마다 음력 3월 보름을 지난 사리 때 진도군 고군면 회동리와 의신면 모도 사이에 바닷길이 2시간 동안 열린다. 폭이 18m나 될 정도로 넓어 회동리에서 모도까지 걸어서 갈 수 있다. ‘신비의 바닷길’에는 애틋한 전설이 녹아 있다. 유난히 호환(虎患)에 시달리던 회동리 사람들은 어느 날 호랑이를 피해 뗏목을 타고 모도로 피난을 갔다. 뽕할머니는 가족들과 피난을 떠나지 못하고 혼자 남게 됐다. 할머니가 헤어진 가족을 만나게 해 달라고 용왕님께 간절히 기도를 하자 바닷길이 열려 가족과 상봉했다는 것이다. 진도군은 ‘제35회 신비의 바닷길 축제’(25∼28일)를 앞두고 뽕할머니 선발대회를 연다. 설화에 나오는 뽕할머니처럼 타지에서 고생하는 자식들을 걱정하고 사랑하는 부모님의 마음을 느낄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올 선발대회는 18일 진도문화원 주관으로 진도문화원 회의실에서 개최된다. 신청은 15일까지 진도문화원이나 읍면사무소에 하면 된다. 뽕할머니는 축제 기간 전통 복장을 하고 관광객과 사진 촬영을 하는 등 홍보대사로 활동한다.

○ 스토리로 되살아난 하멜

헨드릭 하멜이 머물렀던 전남 강진군 병영면 마을에 조성된 동상과 풍차. 동아일보DB
헨드릭 하멜이 머물렀던 전남 강진군 병영면 마을에 조성된 동상과 풍차. 동아일보DB
조선을 서양에 처음 알린 ‘하멜 표류기’를 쓴 네덜란드인 헨드릭 하멜(1630∼1692)은 조선에 억류된 14년(1653∼66년) 중 6년을 전남 강진에서 지냈다. 그가 머무른 전라병영성 마을에는 네덜란드풍 유물이 남아 있다. 납작한 돌을 촘촘하게 쌓고 흙으로 고정한 후 다음 층은 돌을 반대 방향으로 놓고 쌓는 담장이 대표적이다. 이곳에는 하멜 기념관과 동상, 풍차도 있다. 역사적 현장에 ‘스토리’라는 옷을 입힌 대표적 사례다.

강진군은 2016년까지 150억 원을 투입해 하멜기념관 일대에 하멜촌을 조성한다. 하멜 일행이 제주도에 표착했을 당시 타고 온 상선인 스페르베르호(길이 36.6m, 높이 11m)를 실물처럼 건조해 바다에 떠 있는 것처럼 설치한다. 1만5000m² 크기의 튤립 정원을 만들고 펜션 10∼15동을 네덜란드의 옛 주거양식으로 지어 관광객에게 색다른 풍광을 보여준다.

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하멜 표류기#태조 왕건#장화왕후#신비의 바닷길#뽕할머니상#홍동백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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