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봄바람이 부는 전남 장흥군 안양면 수문리 앞바다. 해일호(5t급)에서 잠수부 황진우 씨(52)가 차가운 바닷물 속으로 풍덩 뛰어들었다. 1시간 정도 뒤 바닷속에서 들어올려진 녹색 그물망에는 곡식을 까불러 쭉정이를 날려 버리는 키(챙이)를 닮은 조개가 400여 개 들어있었다. 껍데기는 옅은 회색이나 황색기가 도는 녹색이다. 바로 진흙 속의 보약이라는 애칭이 붙은 키조개다. 길이가 25∼30cm인 키조개는 연안바다에서 자라는 조개 중 가장 크다.
키조개는 봄철에 담백하고 쫄깃쫄깃한 맛이 가장 좋다. 향긋하며 달짝지근한 맛이 일품이다. ‘봄 조개, 가을 낙지’라는 말이 있듯이 봄에는 조개가 살이 통통하게 오른다. 키조개는 나른한 봄날 잃은 입맛을 돌게 하는 데 제격이다.
키조개는 건강에 좋은 저지방, 저칼로리 음식이다. 몸을 이롭게 하는 각종 무기질, 비타민이 많이 함유돼 있고 아연, 칼슘, 철 등 미네랄 성분이 다른 어패류보다 많다. 간의 피로나 숙취 해소에 도움이 된다.
키조개는 서해안과 남해안에서 주로 잡힌다. 1990∼2012년 키조개 연평균 생산량은 5370t인데 이 중 600t 정도가 장흥에서 생산되고 있다. 타 지역에서 사온 새끼 키조개를 잠수부들이 바닷속에 심고 3년 뒤 수확해 다른 지역에 비해 수확량이 많다.
장흥군 안양면 수문리에서는 해마다 5월이 되면 정남진 장흥 키조개 축제가 열린다. 장흥 키조개는 2008년 수산물에서 처음으로 원산지 이름을 상표로 인정해 주는 ‘지리적 표시제’에 등록됐다.
이처럼 장흥 키조개가 유명한 것은 장흥과 보성, 고흥을 둘러싸고 있는 득량만의 개펄 때문이다. 타 지역 개펄에는 모래가 섞여있지만 청정 득량만은 진흙만으로 만들어져 곱다. 30년간 키조개를 양식한 장영복 장흥 키조개정보화마을 위원장(59)은 “장흥 키조개를 탕으로 끓이면 뿌연 우윳빛 국물이 나오고 육질도 다른 곳에서 생산된 것에 비해 부드럽다”며 “청정 개펄 영양분이 많아 조갯살이 통통한 최고 품질이 나온다”고 말했다. 현재 장흥 키조개 가격은 kg당 3만 원 수준이다.
키조개는 요리법도 다양하다. 회무침, 구이, 탕, 샤부샤부, 전 등으로 다채로운 맛을 즐길 수 있다. 특히 키조개는 껍데기를 닫는 근육살이 크고 쫄깃하다. 키조개 근육살은 관자 또는 패주(貝柱)라고 불리며 일본말로는 ‘가이바시라(貝柱)’라고 한다. 키조개 회는 두툼하게 썬 관자를 초고추장이나 겨자를 섞은 간장에 찍어 먹으면 제맛이다.
장흥에서는 키조개, 한우, 표고버섯을 함께 구워 먹는 삼합이 유명하다. 수문리에만 10곳이 넘는 키조개 전문음식점이 있다. 3대째 50년간 키조개 전문음식점을 운영하고 있는 장유환 바다하우스 사장(60)은 “봄철 키조개가 우윳빛 국물이 가장 진하다”며 “회무침을 할 때는 막걸리 식초를 쓰는 것도 좋다”고 말했다. 바다하우스는 빙초산 대신 막걸리 식초를 고집해 채널A 먹거리 X파일에서 ‘착한 식당’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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