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자유총연맹 사무총장 등 간부들이 억대의 국고보조금을 엉뚱한 일에 쓰거나 개인적으로 횡령한 사실이 경찰 수사로 확인됐다. 인쇄물 제작업체에 3700만 원을 지급했다가 3000만 원을 돌려받아 착복하는 수법으로 국고보조금을 빼돌린 사실도 드러났다.
본보가 지난해 10월 자유총연맹의 국고 유용 의혹을 제기해 경찰이 본격 수사에 착수한 지 6개월 만에 상당수 의혹이 사실로 확인된 것이다.
경찰청 특수수사과는 자유총연맹이 2010년과 2011년 지원받은 국고보조금 23억 원 가운데 1억3800만 원을 전용·횡령한 혐의로 사무총장 이모 씨(62)와 행정운영본부장 김모 씨(52), 기획홍보본부장 신모 씨(53)를 불구속 입건했다고 8일 밝혔다. 자유총연맹은 1954년 설립돼 현재 150만 명의 회원이 등록된 국내 최대 관변단체로 매년 10억 원 이상의 국고를 지원받는다.
경찰에 따르면 이 간부들은 2010년 자체 예산으로 충당해야 할 ‘글로벌리더연합 전국포럼’ 행사비가 부족하자 민주시민교육 운영사업이나 아동안전지킴이 등 다른 국고보조사업 예산에서 7000여만 원을 빼내 행사비로 썼다. 국고보조금을 정해진 용도 외에 다른 목적으로 쓰면 현행 ‘국고보조금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3년 이하 징역에 처해진다.
이들은 2011년 ‘내고장 영웅 한국인 찾기’ 사업에 지원된 국고보조금 1억 원 중 2200만 원을 연맹 회원인 대학생이나 연맹 회원 자녀 등의 장학금으로 썼다. 연맹 창립 기념식에 사용할 영상물 제작비용으로도 1500여만 원을 쓰는 등 국고보조금 3700여만 원을 불법 전용했다. 국민의 혈세인 국고보조금을 정상 집행하는 것처럼 서류를 조작하고 실제론 연맹 자체 사업에 돌려쓴 것이다.
조사 결과 국고를 횡령한 사실도 드러났다. 이 씨 등 간부들은 2010년 아동안전지킴이 사업을 하면서 홍보용 수첩 2만 부 제작대금으로 국고보조금 3700만 원을 서울 충무로의 한 인쇄업체에 지급한 뒤 실제로는 샘플 50부만 만들고 3000여만 원을 돌려받았다. 그러면서 이 돈을 부하직원 계좌로 돌려받은 뒤 개인 용도로 횡령했다. 경찰 관계자는 “사라진 자금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자 연맹 간부들이 뒤늦게 돈을 채워 넣으려 했다”며 “빼돌린 돈을 어디에 썼는지에 대해선 구체적인 답변을 회피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이들이 빼돌린 돈이 박창달 총재 등 협회 고위층으로 흘러들어갔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조사했지만 뚜렷한 단서를 찾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전국경제인연합회가 2010년과 2011년 각종 공익사업에 쓰라며 제공한 7억 원을 자유총연맹이 별다른 근거도 없이 써버린 사실도 적발했다. 이 씨 등 연맹 간부들은 정상적인 회계처리를 하지 않고 직원들 개인계좌로 이체해 115차례에 걸쳐 자금을 사용했으며 이 가운데 1억2000만 원은 해외출장비나 대외기관 격려금 언론대책비 명목으로 직원 개인에게 현금으로 지급했다.
경찰은 현금 지급된 1억2000만 원이 사실상 직원들 호주머니로 들어갔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횡령 혐의로 기소해달라고 검찰에 요청했다. 하지만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는 “자금 사용처가 연맹 소요자금으로 돼있고 개인용도로 쓴 정황을 입증하기가 어렵다”며 처벌 대상에서 제외했다.
경찰은 또 사무총장 이 씨가 국고보조금 전용 횡령 과정을 총괄했다고 보고 이 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검찰이 기각하는 등 수사과정에서 검경 간의 시각차가 적지 않았다. 경찰 관계자는 “사건을 검찰에 송치한 마당에 검사 수사지휘의 적정성을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수사지휘를 다시 해달라고 건의하면 불필요하게 시끄러워질 것 같아 검사 지휘에 따랐다”고 말했다.
한편 자유총연맹 윤성욱 대변인은 국고전용 혐의는 시인하면서도 “횡령 혐의를 받는 수첩 제작비 3000만 원은 다음 해에 집행하기 위해 이월시켰는데 사업이 없어져 돈을 개인계좌에 보관한 것”이라며 “최근 그 돈을 국고에 반환하려 했지만 수사 중이란 이유로 허용되지 않아 서울중앙지법에 공탁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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