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저는 1학년 8반 7번 김서현이에요. 얼굴도 모르는 후배한테 편지 받아서 살짝 당황했죠? 3학년이라 수능 때문에 힘들죠? 그래도 새내기인 저를 많이 도와주세요.”
“난 3학년 8반 7번 김소영이란다. 언니는 3년 동안 무단 지각이 많아 생활기록부가 안 좋아. 넌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어. 어려울 땐 언제든지 찾아와.”
8일 오후 3시 반 대전 중구 선화로 충남여고 대운동장. 전교생 1736명이 모여 마치 ‘이산가족 상봉’을 연상케 하는 만남의 행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1, 2, 3학년 같은 반, 같은 번호 학생들이 자매가 되는 ‘세 자매 한마음 결연 상견례’다.
이 독특한 행사는 충남여고가 2004년부터 매년 실시해 온 것. 선후배가 자매의 연을 맺어 고민을 나누고 해소하자는 차원에서 도입됐다. 누군가의 아이디어로 시작된 이 행사는 학교가 아닌 학생 대의원회에서 결정한다.
행사 이후 긍정적 효과가 곳곳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핵가족 시대에 언니, 여동생이 없는 학생들에게 의자매가 생겼다. 학교폭력은 찾아볼 수 없고 고교생활 설계에도 서로 도움을 주게 됐다. 교복, 체육복, 참고서 물려주기는 일상이다.
학교 측은 먼저 학생들에게 자신과 자매를 맺게 될 상대 명단을 알려 줘 편지를 쓰도록 했다. 이날이 바로 편지를 교환하고 상견례를 하는 날이다.
상견례에 앞서 동생 대표의 ‘언니에게 보내는 편지’, 언니 대표의 ‘동생에게 보내는 편지’가 낭독되자 운동장은 ‘까르르’ 한바탕 웃음꽃이 피었다. 이어 상견례 시간. 처음 보는 얼굴이지만 미리 편지를 읽은 터라 살갑다. 참고서와 문방구, 과자, 음료수 등을 서로 선물로 주고받으며 스마트폰으로 기념사진을 촬영하는 모습도 곳곳에서 목격됐다.
1학년 9반 이지은 양은 “오빠밖에 없어 언니 있는 친구들이 부러웠다”며 “언니 도움을 많이 받고 내년에는 후배에게 사랑을 전달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런 전통은 졸업 후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지난해 서울교대에 입학한 한지은 씨(20·당시 3학년 4반 41번)는 당시 1학년 허유미 양(3년)에게 자신이 3년 동안 정리한 입시노트를 모두 물려줬다. 허 양은 “평소에 언니한테 문자도 자주 오고, 방학 때면 만나 밥을 사주면서 고교생활과 입시 이야기를 해 줘 큰 힘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 학교 9회(1979년) 졸업생인 박양서 교무부장(53)은 “재학 중에 이런 행사가 있었다면 당시 고교생활이 더욱 즐거웠을 것”이라고 했다. 교정에는 이 학교만의 전통인 세 자매 결연을 상징하는 우애상(友愛像)도 세워져 있다. 학교 측은 내년 행사에는 졸업 후에도 만남을 이어 가는 ‘선배 세 자매’를 초청할 계획이다.
이선영 교장은 “최근 몇 년 동안 학교폭력대책위원회에 상정된 심의건수가 단 한 건도 없었다. 세 자매 결연 전통이 폭력 없는 학교를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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