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만 군 장병의 사기를 손짓 혹은 표정만으로 좌지우지할 수 있는 여성 가수를 누리꾼들은 ‘군통령(軍統領)’이라고 부른다. 군 위문 공연에서 장병들이 큰 목소리로 노래를 따라 부르는 모습은 마치 전투를 치르는 것 같아 ‘대첩(大捷)’이라고 한다. 2010년 데뷔한 후 수차례 대첩을 치른 9인조 여성 아이돌 그룹 나인뮤지스. 대한민국 60만 장병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이들도 한없이 움츠러드는 곳이 있다. 바로 도로 위다.
2010년 9월 8일 오전 10시경 서울 천호대교 북단 인근 강변북로에서 멤버 이유애린 혜미 민하가 타고 있던 승합차가 가드레일을 들이받았다. 출발 전 타이어가 펑크 난 탓에 예비 타이어로 급히 교체했지만 다른 타이어와 규격이 달랐다. 촉박한 스케줄에 쫓겨 아무도 확인하지 못했고 강변북로에서 속도를 올리자 승합차는 균형을 잃었다.
멤버 셋 모두 안전벨트를 매지 않은 상태였다. 균형을 잃은 차가 빙글거리며 돌 때 멤버들은 속수무책으로 이리저리 부딪혔다. 겨우 멈춰 선 승합차는 금방이라도 폭발할 듯 연기를 쏟아냈다. 충격으로 차체가 찌그러져 뒷좌석 문은 열리지 않았고 겨우 정신을 차린 매니저가 운전석으로 멤버들을 대피시켰다.
사고 충격은 멤버들 머릿속에 지금도 뚜렷하다. 멤버 혜미는 10일 “정신없이 차 밖으로 빠져나왔을 때 얼굴과 몸에 멍이 들고 피가 흐르고 있었다. 3년이나 지났지만 당시의 공포는 아직도 선명하다”며 “하루에 길게는 7, 8시간 차에서 보내는데 사고 이후 멤버 모두 안전벨트를 항상 착용한다”고 했다.
나인뮤지스 멤버 9명 중 실제 운전을 즐기는 이는 이유애린뿐이다. 면허가 있어도 각자 경험한 크고 작은 사고와 여성 운전자를 무시하는 남성 운전자 때문에 운전대 잡기가 무섭다고 했다. 멤버 세라는 단지 여성 운전자라는 이유만으로 욕설까지 들었다. 그녀는 “제한속도에 가까운 속도로 달리는데도 뒤따르던 차들이 계속 추월했고, 일부는 여성 운전자라는 것을 확인하자 창문을 열고 왜 느리게 가냐며 욕했다”고 말했다.
멤버 이샘도 도로가 공포스럽긴 마찬가지다. 운전을 막 시작했을 무렵 창문에 ‘초보운전’을 붙였지만 배려받기는커녕 반칙운전의 희생양이 됐다. 이샘은 “운전이 서툴러 배려해 달라는 의미로 초보운전을 붙였는데 다른 차들이 추월과 끼어들기를 일삼아 무서웠다”고 했다.
사실 나인뮤지스의 차량을 운전하는 매니저도 때때로 반칙운전을 한다. 서울 대전 부산 등 지방 곳곳의 스케줄을 소화하느라 하루에도 많게는 1000km 가까이 운전하다 보면 신경질적으로 되기 일쑤고 시간에 쫓겨 과속도 빈번하다. 나인뮤지스 멤버는 ‘시동 꺼! 반칙운전’ 인터뷰를 계기로 매니저가 착한 운전을 하도록 철저히 ‘감시’하기로 약속했다.
“스케줄이 바빠도 매니저가 반칙운전 하지 않도록 잔소리 많이 할게요. 그러면 다른 차량도 안전해지고, 그러다 보면 저희 같은 여성 운전자들도 마음 편히 운전대 잡을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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