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인형을 가지고 놀 때 기뻐하듯/아버지의 딸인 인형으로/남편의 아내 인형으로/그들을 기쁘게 하는 위안물 되도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류 서양화가이자 시인인 나혜석(1896∼1948)이 지은 시 ‘인형의 가(家)’ 첫 구절이다.
경기 수원시의 대표적인 번화가로 손꼽히는 인계동 밀레니엄길. 이 길을 걷다 보면 문화와 예술이 한데 어우러진 나혜석 거리를 만나게 된다. 나혜석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2000년 수원시가 조성한 길이다. 거리 길이는 440m 정도. 거리 입구에는 그의 약력과 작품에 대한 이야기가 깨알같이 적힌 안내석이 있다. 거리에서는 그가 지은 시와 동상, 그림, 판화 등을 만날 수 있다. 그중에서도 거리 양 끝에 자리한 2개의 나혜석 동상은 완전히 다른 모습이어서 흥미롭다.
2개의 동상은 여성 조각가 임송자 씨가 2001년 2월 만들었다. 상류층 집안에서 태어난 조선 최고의 여성 화가이자 엘리트 여성이었으나 끝내 행려병자로 비참하게 죽어간 삶만큼이나 2개의 동상은 대조적이다.
나혜석 거리 중앙광장 앞에 있는 첫 번째 동상은 웨이브 머리, 블라우스에 치마, 그리고 당장이라도 어디론가 떠나려는 듯 양손에는 여행용 가방과 캔버스가 들려 있다. 신여성과 화가의 이미지를 담은 것. 강렬한 눈빛에서 여성의 각종 권리와 혜택을 요구했던 페미니스트의 모습을 느낄 수 있다.
이곳에서 200여 m 떨어진 곳에 있는 두 번째 나혜석 동상은 사뭇 다르다. 쪽진 머리에 비녀를 꽂고 고무신에 버선을 신었으며 치마저고리를 입었다.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모습은 전형적인 한국의 여인상이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그가 앉은 의자의 절반은 비어 있다. 동상 뒤로는 나혜석이 생전에 저항했던 전근대적 사회를 상징하는 벽이 있다. 벽에는 ‘인형의 가’가 부조로 새겨져 있다. 이 대조적인 2개의 동상은 전통적 여인상과 가부장적 제도에 반발했던 신여성상을 나혜석을 통해 극명하게 대비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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