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공부]학교의 새 골칫거리 ‘복도걸’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4월 30일 03시 00분


모범생 아이가 ‘은따(은근한 따돌림)’ 주도

최근 초등 고학년과 중학교에서 이른바 ‘복도걸’로 불리는 여학생들이 주도하는 은따(은근한 따돌림) 현상이 심각하다. 복도걸은 쉬는 시간만 되면 복도로 몰려나가 무리를 지어 다니며 자신과 마음이 맞지 않는 학생에게 공공연히 면박을 주거나 그 학생을 무시하는 언행을 하며 은따를 조장한다.
최근 초등 고학년과 중학교에서 이른바 ‘복도걸’로 불리는 여학생들이 주도하는 은따(은근한 따돌림) 현상이 심각하다. 복도걸은 쉬는 시간만 되면 복도로 몰려나가 무리를 지어 다니며 자신과 마음이 맞지 않는 학생에게 공공연히 면박을 주거나 그 학생을 무시하는 언행을 하며 은따를 조장한다.
“넌 제대로 하는 게 하나도 없니? 애들한테 종이 나눠주는 것도 제대로 못해?”

최근 서울의 한 초등학교 5학년 교실. 이 학급 임원인 A 양은 같은 반 B 양이 학생들에게 나눠주던 가정통신문 뭉치를 바닥에 떨어뜨리자 모두에게 들리도록 면박을 줬다. A 양의 이야기를 들은 일부 학생은 땅에 떨어진 가정통신문을 집어 먼지를 털어내는 시늉을 하면서 “에이, 먼지 묻었잖아”라며 얼굴을 찌푸렸다.

A 양의 행동은 수업시간에도 계속됐다. ‘아파트에서 애견을 키워도 되는가’를 주제로 자신의 생각을 발표하는 국어수업. B 양이 교실 앞에 나와 “저는 강아지를 좋아합니다. 개인이 자신의 집 안에서 키우는 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합니다”라며 발표를 시작하자 A 양은 “쟨 왜 저렇게 이기적인지 몰라?”라고 말을 자르며 끼어들었다.

A 양은 “아파트는 여러 사람이 함께 사는 곳이니까 남을 먼저 배려해서 강아지를 키우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라고 비아냥대듯 말했다. A 양의 말을 들은 학생들은 웅성대기 시작했다. 교사가 “친구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야죠”라며 상황을 정리하려 했지만 A 양의 행동이 있은 뒤론 학생 대부분이 B 양의 발표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이 학급 김모 양은 “학급 임원인 A는 공부를 잘하고 인기도 많은데 특별한 이유 없이 B를 싫어한다. B에게 욕을 하거나 노골적으로 괴롭히진 않지만 다른 아이들에게 ‘얼굴이 못생겨서 같이 놀고 싶지 않다’ ‘학교에서 나대는 꼴을 보기 싫다’면서 험담을 하고 다닌다”면서 “B가 수업시간에 발표를 해도 A가 다른 학생들이 다 보도록 딴짓을 하거나 ‘태클’을 거니까 다른 학생들도 덩달아 B를 무시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모범생 ‘복도걸’이 주도하는 은따 현상 심화

최근 초등학교 고학년과 중학교에서 이른바 ‘복도걸’로 불리는 여학생들이 주도하는 은따(은근한 따돌림) 현상이 심각하다.

‘복도걸’은 쉬는 시간만 되면 복도로 몰려나가 무리를 지어 다니는 학생들을 일컫는 신조어. 복도걸은 자신과 마음이 맞지 않는 학생에게 공공연히 면박을 주거나 그 학생을 무시하는 언행을 하며 은따를 조장한다.

복도걸은 이른바 ‘일진’이나 불량학생은 아니다. 이들 중에는 불량학생은커녕 국제중, 특목고 진학을 준비할 정도로 공부를 잘하거나 학급 임원을 하는 등 모범생으로 통하는 여학생도 많다.

이들에 의해 자행되는 은따는 위에 소개된 B 양의 경우처럼 피해학생에게 욕설을 하거나 물리적 폭력을 가하지는 않은 채 이뤄진다는 점에서 ‘학교폭력’으로 규정하기도 쉽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 하지만 피해학생은 극심한 스트레스를 호소한다.

경기지역 초등학교 6학년 정모 양은 “최근 우리 반에서도 성적 상위권 ‘복도걸’인 C가 ‘걔가 우리 반 애들 다른 반 애들한테 욕하고 다니는 거 알아? 내가 들었는데 너희도 조심해’라고 말하고 다니기 시작한 뒤 학생들이 점점 피해학생과 거리를 두게 됐다”면서 “다른 학생들도 ‘안됐다’고 생각하지만 딱히 학교폭력이라고 보진 않는다. 괜히 나섰다가 자신도 눈밖에 날까 봐 쉬쉬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성적 안 나오면 책임져”… 조별모임에서 소외

‘복도걸’ 모임은 어떻게 생겨나고, 이들은 어떻게 은따 현상을 조장할까? 복도걸에 의한 은따는 새 학기가 시작되고 1∼2개월이 지난 시점부터 본격화한다. 학급 학생들에 대한 파악이 끝나고 친한 학생들의 모임이 만들어지면서부터다. 이때 일부 여학생은 자신과 자신들의 모임의 영향력을 과시하려는 목적으로 마음에 들지 않거나 어눌해 보이는 학생을 지능적으로 비난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최근 학교 수업에서 모둠활동이 확대되면서 성적과 진학에 예민한 일부 ‘복도걸’들이 수업을 따라오지 못하는 학생의 은따를 조장하는 일도 일어난다. 최근 경기 용인의 한 초등학교 6학년 학급의 수학시간에는 복도걸로 통하는 D 양이 같은 조 학생을 “나 국제중 가야 하는데 너 때문에 점수 깎이면 알아서 해”라고 몰아세우는 일도 있었다. 문제풀이법에 대해 토론할 때 D 양은 해당 학생을 ‘투명인간’ 취급하는 일도 벌어졌다.

이 학급 E 양은 “조별 토의시간에도 은따를 당한 아이는 혼자 책만 보고 있다. 공공연하게 무시당하다 보니 같은 반 학생들도 같이 어울리려고 하지 않는다”고 귀띔했다.

모범생인 아이가 설마?

학생들에게 ‘복도걸’은 비난의 대상이기보단 동경의 대상인 경우가 많은 것이 문제다. 공부도 잘하고 유행에 민감해 인기가 많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실제로 복도걸의 공부법을 알고 싶어 따라다니는 학생도 있다. 친해지기 위해서 그들을 칭찬하면서 접근하고 틴트, 비비크림 같은 화장품을 선물로 주면서 접근하기도 한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 5학년 F 양은 “공부도 못하고 인기 없는 아이가 다른 친구 욕을 하면 반 친구들도 귀담아 듣지 않겠지만, 복도걸은 모범생이라 선생님한테 칭찬받고 반에서도 영향력이 있기 때문에 무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복도걸의 존재는 학교폭력 피해 설문조사 등을 통해서는 발견되기가 쉽지 않다. 교사나 부모가 이런 사실을 알게 되더라도 ‘모범생인 아이가 그런 일을 할 리가 없다’거나 사춘기 여학생 사이에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일로 치부하고 넘기는 경우도 있다.

글·사진 이태윤 기자 wolf@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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