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로 중생을 구제하는 고려 관음보살이 600여 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후손에게 그 미소를 허락했다.
그동안 존재가 알려지지 않았던 고려불화 1점이 새롭게 모습을 드러냈다. 고려불화는 예술적 완성도가 높은 데다 지금까지 세계를 통틀어 160여 점만 확인돼 국제 경매시장에서도 진객(珍客)으로 꼽히고 있다. 게다가 이번 작품은 사상 처음으로 발견된 ‘윤왕좌(輪王坐)’ 자세의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여서 국보급 가치를 지닌 것으로 평가된다. 윤왕좌는 부처나 보살이 정면으로 앉은 채 세운 오른 무릎에 오른팔을 올리고 왼손은 바닥을 짚은 자세다.
정우택 동국대 대학원 미술사학과 교수는 29일 “일본 후쿠오카 현 조텐(承天)사에서 14세기 후반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수월관음도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수월관음도란 달밤의 물가 바위에서 관음보살이 선재동자에게 법을 설파하는 장면을 담은 불화를 일컫는다.
고려 문화재의 윤왕좌는 조각상이나 쇠거울 선각(線刻·선으로 새긴 그림이나 무늬)으로 일부 존재할 뿐 불화에서는 유례가 없다. 지금껏 알려진 고려 수월관음도는 비스듬히 옆으로 반가좌를 튼 자세가 대부분이었다. 이 때문에 이번 불화 발견은 조선시대에 성행했던 윤왕좌 관음도가 당대 중국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는 기존 학설을 뒤집는 결정적 계기도 마련했다.
이 그림은 가로 47.5cm, 세로 97.1cm 크기로 비단 바탕에 채색하는 전형적인 고려불화 기법을 따랐다. 후대에 수정하거나 손댄 흔적이 없으며, 제작 당시 원형을 거의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기존에 알려진 14세기 전반 고려불화인 일본 야마토문화관(大和文華館) 수월관음도와 비교해 보면 △의복 형태 및 착용 방식 △투명 베일의 표현법 △국화무늬 치마 문양 등이 놀랍도록 닮아 동시대나 14세기 후반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불화가 발견된 조텐사는 조선시대 양국 교류의 거점으로 이용되던 사찰로 고려 동종(1065년)과 또 다른 고려불화 반가좌 수월관음도를 소장한 곳이다. 정 교수는 “윤왕좌 수월관음도는 세련된 공간미와 차분한 주제의식이 조화를 이룬 걸작”이라고 말했다. 정 교수는 이번 성과를 5월 4일 동악미술사학회 전국학술대회에서 발표할 예정이다.
댓글 0